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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Dec 06. 2021

소리와 냄새가 있는 집

- 집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를 담은 생활 양식이다. -

소리와 냄새가 있는 집

                                                                                            

 

사람이 움직이는 공간에는 소리가 울리며, 냄새도 난다. 사람마다 냄새가 다르며, 소리도 다르다. ‘냄새’라는 단어로 계급신분사회 단면을 보여준 영화 ‘기생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솔직하게 나도 인정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유독  낡고 퀘퀘한 냄새가 많이 나는 전철 호선이 있다. 지인은 노인층이 많은 전철에서 유독 냄새가 많이 난다며 타기 싫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냄새는 어릴 때 반지하 셋방에서 나는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 죽음은 유년시절 다양한 집을 경험하게 했다. 반딧불이와 밤하늘 별이 보이는 고향집을 떠나 처음 온 곳이 하월곡동 달동네였다. 버스에서 내리면 걸어서 30분을 등산해야 했다.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단독주택을 늘 부러워했다. 서울와서 처음으로 단독주택을 가지게 되었다. 방이 5개, 다락방 1개, 장독대가 있는 마당이 있었다. 2개 방은 별채처럼 부엌이 따로 있어 세를 받았다. 대문만 열면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몇 차례 집을 옮겼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큰아버지에게 서 준 빚보증 때문에 우린 반지하방으로 가게 되었다. 반지하방은 햇살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냄새가 잘 빠지지 않고 대낮인데도 저녁때처럼 눈이 침침했다. 반지하방에 다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결혼을 하고 시댁근처 산본에서 살았다. 시어머님댁은 큰 평수로만 이루어진 아파트에서 사셨다. 산 밑이라 여름에도 선풍기를 틀지 않았으며, 햇살과 바람이 넘나드는 집이었다. 상큼한 냄새가 났다.  공간마다 붙박이장이 있어 깔끔했다. 하얀 걸레가 행주로 보일 정도로 먼지도 없었다. 하지만 큰아주버님 사업 실패로 작은 평수로 이사가면서 붙박이장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쏟아지는 물건들을 보면서 욕심으로 채워진 마음을 보게 되었다. 내가 싫어했던 낡고 퀘퀘한 냄새는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나는 냄새였고, 깔끔하고 넓은 공간에서 나는 냄새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서 나는 냄새였다. 서로 부대끼지 않으니 냄새가 배일 틈이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10년이 지나야 은퇴를 한다. 은퇴 후에는 파주나 강화지역으로 가서 살 계획이다. 200평 대지위에 10평 남짓한 이동식 목조주택 3채를 놓고 ‘봄맘(보다 마음)정원’이라는 공간을 꾸며 노후를 보낼 생각이다. 3채 각각 주거공간, 진로에 관한 책으로 구성된 서재공간, 진로코칭을 위한 협동조합 사무실 공간으로 꾸밀 것이다. 그동안 쌓은 경력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펼치고 싶다. 마당 구석에는 상추,파,고추, 오이 등을 심어 놓을 텃밭을 둘 것이다. 마당 둘레에는 밤나무, 감나무,사과나무, 도토리 나무, 은행나무 등을 심어서 계절마다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 한 달에 한 번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서 가족연주회를 열고 싶다. 


지금 살고 싶은 집이 없다. 꼭 집을 가져야 할까 의문이 든다. 유목민처럼 텐트 생활을 하며 돌아다니고 싶다. 소유하려고 에너지를 소진하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가슴으로 느끼고 채우고 싶다. 그러다 죽으면 수목장으로 나무 밑 거름이 되고 싶다. 어쩜 ‘기생충’영화에 나오는 박사장네집처럼 대저택이 아니면 나머지 집은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살고 싶은 집을 다시 묻는다면 아름드리 큰 나무를 살리기 위해 만든 집을 갖고 싶다. 집 안에 나무가 자라고, 우물이 있는 곳을 원한다. 밖으로 향한 창문을 열면 공기, 햇살, 사람 냄새 등이 그대로 들어오는 집을 원한다. 가끔 지붕이 열리면 밤하늘 별도 볼 수 있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협주곡처럼 들리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사는 내 집을 둘러보니 부끄러워진다. 정리를 못하는 나에게 자연을 닮은 집이 올 것 같지 않는다. 그런 집에 살수 있도록 품격을 갖추고 싶다. 

후기

살고 싶지 않는 집은 있었으나, 살고 싶은 집을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은 없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정원있고 2층 단독주택을 원했다. 그 곳에서 어떤 삶을 살지 그려본 적이 없었다. 이 과제가 9주차 과제 중 가장 어려웠다. 내가 움직이고 살아가는 공간은 구조가 아니라 삶의 양식이었다. 진지하게 그 공간에 무엇을 담을 지 고민하게 되었다. 육체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가 움직여서 공명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사람들과 모여 뭔가를 하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공간말이다. 오늘 부끄럽게도 이 숙제를 마감하지도 못하고 제출한 것에 대해 반성을 한다. 제출하느라 급하게 마무리했지만, 이렇게라도 끝을 맺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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