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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Mar 21. 2022

책이 있는 카페는 나에겐 다락방이다.

- 누구나 자신 만의 카페가 있다-

변화하고 싶었다. 집과 회사로 오가는 일상이 무료했다. 늘 같은 자리를 공중에서 선회하다 찬 겨울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잠자리처럼 느껴졌다. 어디로 가고 싶으나, 마땅히 갈 곳도 없었고, 작년보다 나아진 나를 만나고 싶었으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결심했다. 올해는 달라지겠다고 다짐했다. 자기계발 분야에서 한 소식을 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책을 가까이하고 자기 성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책’은 책장에 꽂혀 있는 종이에 지나지 않았다. 한때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알음알이만 커질 뿐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책을 읽은 친구와 대화에서 차이가 났다.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나와 달리 핵심으로 들어가 분석하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았다.


집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건 나에겐 맞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의자에 오래 앉아 공부하다 다리가 퉁퉁 부어 힘들었던 경험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대신 책이 있는 카페에 간다. 커피를 마시며,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몇 장 읽다, 재미있으면 끝까지 보고 나온다. 가끔 노트북을 들고 가서 글을 쓰고 나올 때면 오늘 잘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해진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 문을 연 카페는 꼭 가본다. 그래서 공부하기 좋은 곳인지, 읽을만한 책이 있는지, 그리고 주인장이 얼마나 호의적인지를 보고 판단한 후 다음에 찾기도한다.


카페에 앉아 책을 보고 있을 때 방해되는 손님은 커플이다. 커피를 마시며, 신나는 이야기도 아닌데, 서로 맞장구를 치고 있다. 그럴 때면 눈은 책을 보고, 손은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귀는 그네들로 향한다. 서로 싸우는 커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열세에 몰린 사람에게 응원을 보내고, 꼬냥꼬냥하는 커플을 보면 ‘그래 지금이 좋을 때지’라며 속으로 말한다. 한 번은 커플이 들어와 책을 보더니, 서로 책 내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책이라면 알라딘 문고에 중고로 팔아야 돈이 남는다는 남편의 모습과 대비되어 우울해질 때도 있었다.


어릴 때 카페와 비슷한 공간이 마을 회관이었다. 마을회관에는 마을문고가 있어, 책이 배치되어 있었다. 책을 빌려서 보기도 했고 새로운 책이 들어오면 새 신발 신는 것 처럼 설레었다. 가끔 마을 회관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화투도 치고, 설날이면 떡국을, 추석에는 송편을, 복날에는 삼계탕을 나눠먹기도 했다. 그날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나눠주셨다.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신나하며 깡충깡충 뛰어오곤 했다. 종이가 귀한 시절이라 하얀 종이를 볼 때마다 아껴써야 한다는 생각과 크레파스를 닳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힘 주어 그리지도 못했다. 마을회관에 모여 동네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날 엄마가 만들어 주던 원피스를 입고 동화책을 낭독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한달 내내 암기해서 단상에 섰으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울먹였고, 잘 먹고 잘 살았다로 끝맺었다. 그때 어르신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셨다. 그날 수고했다며 손에 쥐어주던 박카스가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료였다. 가끔 지칠 때 힘을 내고 싶어 박카스를 사먹을 때도 있다.


서울로 올라와 좋아했던 장소가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에 올라 낮은 천정으로 엎드려 지내야 했지만, 내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공간이 비좁아 책을 다락방에 쌓아 놓았기에 다락방은 나에겐 책장있는 카페와 같았다. 다락방에선 마당이 보이고, 엄마가 무엇을 하고 계신지, 건너방 오빠와 언니는 공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다락방 밑 부엌에서 어떤 음식이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는 냄새가 올라와 침을 삼키기도 했다. 다락방에서 라디오를 켜면 혼자가 아니라 다락방 바깥 세상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아 외롭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 소리가 내 귀로 바로 들을 수 있어서 톤을 높여야 하는지 속도를 낮추어야 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에겐 다락방은 독서실 개인 공간이 셈이었다.


이젠 그런 공간을 만날 수 없다. 아마 책장이 있는 카페 구석 자리로 가는 이유가 다락방에 온 느낌을 받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기다시피 들어간 공간 속에서 나에게 허용된 유일한 사적공간이었기에 지금도 그립다. 새로 이사한 집 거실에 맞지도 않는 책장을 각도를 바꾸어 가며 배치한 것도 책으로 둘러싼 다락방처럼 그런 공간을 갖고 싶었나 보다. 가난한 시절 대부분 시간을 보냈던 다락방 공간이 이젠 근사한 개인 독서실처럼 느껴지는 건 온전하게 나만을 위한 공간을 갖지 못해서 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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