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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Apr 27. 2021

기나긴 하루

- 나를 움직이는 힘은 즐거움 , 새로운 만남-

한가로운 날일 줄 알았는데  아시는 분 빙부상 소식에  분주해졌다. 

더구나 집에다 핸드폰을 두고 와서 연락이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에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까지 챙겨 왔다. 오늘은 '채식 공감'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비건 모임을 한다는 공지를 보고 참여의사를 밝혀 놓았다.  7시에 각자 가져온 비건 음식을 놓고  포트럭 저녁식사를 한 후  심영신 작가의 식물 모티브 회화작품을 감상한 후  드로잉 엽서를 만들어보는 시간도 있다고 한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증산시장 쪽이라 퇴근 후 갈려고 마음먹었는데, 부고 소식에 갑자기 을씨년스러운 바람처럼 마음이 헷갈린다.  


상수역에서 약수역까지 다시 약수역에서 고속터미널까지 전철 여정이 길게 느껴진다. 하긴 출퇴근길이 마을버스나 도보로 가능 한 곳에 있다 보니, 전철을 이용하지 않는 편이라 낯설다.  사람들 표정을 보면 바삭거리는 낙엽처럼 물길 없이 창백하다. 다들 핸드폰 속 세상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 마냥 서로 눈길마저 거둔다. 그런데 자기가 내릴 역만 되면 주섬주섬 챙겨 들고일어나는 모양새가 자못 신기하다. 이윽고 고속터미널에 내려 출구를 찾는다.  고속터미널에서 내리는 사람들 물결을 보다 보니 지하상가에서  득템 하고 싶어 지는 유혹이 느껴진다.  성모병원에 들어서니 다른 병원 장례식장과 달리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세련됨이 느껴진다.  한 생을  잘 살다 가신  고인들의 흔적이 보인다. 나름 복잡한 한국 삶에서 험난 파도를  넘기고  후손들에게  정신적 유산을 물러준 분 같아 보인다. 입구에서부터  빽빽하게 채워진 근조화환 숲을 지나 지인의 조문을 마쳤다. 그제야 어깨의 무거운 짐이 내려지고 다음 모임으로 갈 수 있다는 기쁨이 샘솟는다.   


포트럭 파티라서 음식을 준비해 가야 한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이다. 시간이 있으면 우엉 전이나 김치전 아니면 가지찜이라도  했을 텐데  아쉽게 난  감자떡 두 팩으로  얼굴을 내밀기로 했다. 다행히 고속터미널 상가 쪽으로 지역 농산물을 파는 곳이 있어서 찐 감자떡을 샀다. DMC역 5번 출구를  머릿속에 되뇌며 증산시장을  빨리 탐험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약간 상기되어 있다. 퇴근길이라 전철 안이 복잡하다. 자리에 앉아보기 커넝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나도 움직이게 된다. 환승역에서 다행히 엉덩이를 재빨리 안착시킨 덕분에 앉을 수 있었다. 졸음이 온다. 그냥 망원역에서 내릴까 말까 고민이 생긴다. 고민하는 사이에 DMC역에 당도했다. 역에서 내리니 어디로 가야 하나 헷갈린다. 바람은 불고 옷깃은 저절로 여며진다. 길가는 노인부부에게 길을 물으니 시장을 안내해준다. 재개발지역이라 길이 너무 어둡다. 이따 올 때 절대로 이쪽으로는 오지 밀아야지 다짐하며 길을 걸었다. 


드디어 증산시장 안에 있는 '러브 포션'을 발견했다. 자그마한 가게인데, 이미 세분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채식 베이커리 카페였다.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내밀었다. 김밥, 카레, 야채 꽂이, 브로콜리 주스, 떡볶이, 미니사과, 토마토 절임 등 다양한 음식이 순식간에 차려졌다. 각자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다른 회원들을 기다렸다. 채식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공감대가 빠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해 공감도 많이 해준다. 위로받는 느낌이다. 뒤늦게 온 회원들과 나머지 음식을 먹은 후, 컬러링 시간을 가졌다. '씨방'에서 힌트를 얻어서 그림을 그린 작가의 지시하에 각자 엽서에 채색을 하기 시작했다. 채색을 끝낸 후 작가님이 하나하나 품평을 해주셨다. 같은 모양이지만 다른 색깔로 다른 에너지를 뿜는 그림을 보면서, 각자 개성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10시 30분이 다되어 간다. 오늘 하루아침 8시에 문을 나선 후 10시 30분까지 밖에 있어본 적이 처음이다. 근데 피곤하지 않다. 뭔가 알차고 재미있는 모임이다. 텃밭도 가꾼다고 하니, 텃밭에서 나오는 작물을 가지고 파티를 하자고 한다. 정모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순식간에 동화되는 느낌이다. 채식요리, 허브교육, 비건 모임 등 다른 모임이지만, 한 군데 모아진다. 결국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기 위해서 신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는 병을 주셨구나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안정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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