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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Mar 26. 2021

'힘'빼기가 '힘'주기 보다 더 힘들다.

-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


올 해를 돌아보니 여러 가지 활동에 간섭하면서 힘을 주고 살았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남들보다 과도하게 힘을 주고 다녔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에너지가 소진되어 일을  끝까지 마무리 하지 경우가 다반사다. 예민한 성격인 데다가 실수하지 않을까 불안과 초조감을 극복하려고 내 안의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끌어 모아 발산한다.  119 소방대원이 늘 대기하는 것처럼 나의 신경세포는 대기 중이다. 초반에는 전력질주하다 막판에 끌어다 쓸 힘이 없어 뒤쳐지게 된다. 

살면서 힘을 빼야 할 때 힘을 줄 경우가 많았다. 링거 줄을 꽂는 간호사가 늘 하는 말이  "힘 좀 주지 마세요, 제발 힘 좀 빼요."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순간 힘을 빼다가도, 바늘이 피부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힘을 주어 힘줄을 세운다. 또 곧 나올 것 같아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힘을  주면 오히려 나오지 않는 경험도 많다.  직장에서도 업무를 할 때, 힘을 과도하게 주다 보니  주변이 보이지 않아 혼자서 일을  처리할 때가 종종 있다. 참여했던 팀원들은 하나둘씩 힘을 빼고 지켜보는 관중의 자세를 취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가장 일을 많이 했음에도 평가는 똑같이 나올 때마다 '앞으론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좀 현명하게 살자'라고 다짐하지만 마음과 몸의 습관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그래, 너 혼자 다 해봐. 너 먼저 나가떨어질 테니."라는 동료들의 표정이 보일 때도 멈추지 못한 것을 보니, 한 두해 배인 습관이 아닌 게 분명하다. 

돌아보면, 힘을 줄 때보다 힘을 뺄 때 일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3년 전 난소 혹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가스만 나오기를 기다렸다. 6인실에서 두 번째로 입원한 나로서는 순서대로 미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미음을 먹기 시작하는데 나에겐 소식이 없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링거 걸이대를 끌고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순간 복도를 따라 앞질러 오던 음식  냄새가 제일 향긋한 냄새였다. 보이지 않게 눈물이 났다. 무엇 하나라도 쉽게 되지 않는 삶의 단편들이 떠올라 눈물이 솟구쳤다.  나대로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걷기 운동을 열심히 했다. 1층부터 4층까지 링걸 걸이대를 잡고 틈틈이 걸었다. 이젠 층마다 알아보는 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3일째 되는 아침에 간호사가 와서 물었다. "아직 소식 없어요. 좀 배에 힘을 주고 해 보세요. 운동 열심히 하는데 왜 이리 소식이 없을까요?" 걱정해주기 시작했다. 같은 병실에 있는 분들도 화제가 단연코 언제 소식이 있느냐였다. 



점심시간을 피해 걷기를 하다  1층에 예배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불교 경전을 읽는 사람인데도, 예배실이라는 문구가 크게 들어왔다.


2시간 이후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신다고 해서 시간에 맞추어 내려갔다. 

들어가니 여 목사님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어떤 일로 오셨나고 물었다. 


속으로 이런 일로 기도해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 하고 망설이다 

"사실은 가. 스. 가. 안. 나. 와. 서....."라고 어렵게 말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목사님이 "며칠째인데요. 운동을 열심히 하면 나오는데..."라며 

말문을 여셨다. 


" 3일째인데, 운동 정말 열심히... 했는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했다. 

목사님이 휴지를 건네면서, "그럼 같이 기도를 합시다"라며 

내 손을 잡고 진지하게 가스가 빨리 나오기를 기도해주셨다. 

그리고 나니 한 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저녁 미음이라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건만, 물거품처럼 공중에 날아갔다. 

기도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그날 늦은 밤 커튼을 치고 혼자 울고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놓겠다고 하면서 소식이 있는지 물었다. 

말하기도 귀찮아 고개만 두어 번 가로젓고 말았다. 

폭풍에 내려앉은 풀처럼  풀이 죽어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해보자는 심정으로 바닥에 앉아 시도를 해보았다. 

힘을 주었지만 가스는 나오지 않았다. 

'왜 안 나오지', '열어보니 대장과 소장에 혹이 달라붙어 내과의사가 급히 내려와 수술했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걸리는 게 아닐까', '아이들은 언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버렸다. 


그 순간 몸의 힘이 빠지고, 그토록 들리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심을 하다 두 번째 소리가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처럼 크게 들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가스가 쉽게 나왔다. 이제야 난 미음을 먹고, 

두 아이들을 조만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미음을 먹는 나를  주변에서 축하해주셨다. 

같은 호실에 입원한 분들이 "미음이 그렇게 맛있냐며, 정말 행복하게 먹는다"라고 웃으셨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내가 유방암 4기 정도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세상에 그렇게 얼굴이 노랗고 어두운 사람이 없었다며 속내를 밝혔다. 

항암치료도 효과가 없어서 포기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미안했다. 

유방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보다 더 아픈 사람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힘이 세게 주어진 것 같으면, 한 번씩은 돌아보게 된다. 

정말 힘이 들어갈 때인지를 말이다.  

힘을  빼면 사물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그러다 보면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중요하고 도움이 될 사람 같으면 과도하게 힘을 줄 경우도 많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내 방식으로 표현한다. 

나중에 상대방은 부담스러워 자연스레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밀고 당기기를 잘하는 사람이 

처세에 능한 사람임을 알지만, 아직도 미숙하다.  



힘을 줄 때와 힘을 뺄 때를 잘하는 사람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도 힘 빼는 연습 중이다. 


그런데 힘 빼야지 하는 생각 자체가 힘을 주는 행위이기에, 

그 생각 하나 돌아보고, 다스리는 연습부터 해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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