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회색인간(요다출판사, 이하 출판사 동일)>을 시작으로, 최근 <양심고백>과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까지. 약 4개월 동안 총 다섯 권의 소설집을 펴낸 작가가 있다. 이 작품 수와 출판 속도만으로도 놀라운데, ‘공장 노동자 출신 작가’, ‘인터넷 커뮤니티가 낳은 작가’, 라는 수식어도 흥미롭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유(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 올린 소설들로 한순간에 주물 공장 노동자에서 다섯 권의 책을 낸 김동식 작가를 만났다. 작가가 서울에 처음 상경해서 지금까지 생활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성수동 한 카페에서다.
Q. 10년 동안 다니던 주물 공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서 살고 있다. 요즘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2016년 12월에 공장을 그만뒀다. 작가가 되거나 글을 더 쓰려던 건 아니었다. 10년 동안 일을 하면서, 제대로 놀러 가 본 적도 없었다. 공장을 다닐 때 공장과 집만 왔다 갔다 했다. 오랫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다보니 일 년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가려던 여행은 못 갔지만,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게 좋더라. 편해서 그런지 살도 10kg이나 쪘다. 그러던 중에 2017년 9월에 책 이야기가 나왔다. 책 준비를 하면서, 카카오페이지에 단편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Q. ‘작가’가 되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댓글로 보다가, 실제로 보니 어땠나.
커뮤니티 댓글에는 거의 악플이 없다. 창작자를 응원해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피드백이 빨라 재미있는지, 없는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글을 쓸 때 댓글에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라 반응을 기대했는데 책에 대한 피드백은 상대적으로 느려 궁금했었다.
인터뷰에서 ‘노동자 출신’ 작가로 주목 받았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기대한 부분이 있었는데 낯설다는 의견도 있었다. 작가와의 대화나 독서 모임 등에 나가면 어색하긴 한데, 내 소설 작품으로 노인 문제, 기계화된 인간 등 다양한 주제로 연결 짓는 게 신기했다.
Q.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인터넷으로 볼 때와 달랐나.
책을 위해서 특별히 수정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커뮤니티와 책은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더라. 커뮤니티 사람들은 긴 글을 싫어한다. 제목에 ‘스압(스크롤 압박) 주의’라고 쓰지 않으면 읽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길이 길지 않고, 단락도 많이 띄워져 있다. 출판사 측과 이야기할 때 이 부분을 최대한 살려서 냈다. 어느 서평을 보니 여백이 많아 종이가 아깝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최근 출간한 4, 5권에서는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 편집했다.
9시면 주물 공장에 나가 금형 틀에 쇳물을 부었다. 일이 많을 땐 야근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6시에 퇴근했다. 서울에 온 지 10년.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 성수동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바뀐 적 없던 패턴이었다. 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삶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건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였다. 공장 일이 끝나고 하루 6~7시간 동안 매달려 밤마다 글을 썼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확인한 수백 명의 독자 댓글은 그를 다시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Q. 글은 어떻게 쓰게 됐나?
어렸을 때 오락실에 다니는 게 취미였는데, 요즘은 오락실이 잘 없지 않나. 특별하게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장 일이 끝나면 집에 와서 TV를 보거나 커뮤니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을 즐겨봤는데, 가끔 보면 댓글로 이야기를 이어서 짓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여기 댓글 쓰듯이, 다른 사람들처럼 잡담 올리듯 가볍게 생각해 글을 써 올렸다. 사진이나 다른 건 생각한 적 없다. 글은 컴퓨터와 키보드만 있으면 쓸 수 있으니까.
Q, 짧은 시간에 다작했다. 어떻게 구상했나?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시간이 많아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지만(웃음) 주로 인터넷에서 발견한 소재를 이야기로 옮기는 편이다. 커뮤니티 글에는 몇 가지 원칙(?)이 존재한다. 도입부에 흥미로운 설정이나 상황을 넣고, 문장은 최대한 간결하게 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이나 미투 관련 이슈가 화제인데 그 화제에 달린 댓글이나 뉴스 등을 보면서 살을 덧붙이는 거다.
Q. 어떤 글이 재미있었고, 또 쓰고 싶었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읽은 책이 10권도 되지 않는다.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면서 글을 읽었다. 외국 공포 글 번역본이나 일본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즐겨 읽었다. 자극적이고 잔인한 것보다 흔한 이야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끌어내는 이야기가 재밌다. 반전이 있거나, 이야기 설정 자체가 흥미로운 게 좋다.
처음부터 글 쓰는 주기를 따로 정한 건 아니었다. 댓글 반응을 보니 더 쓰고 싶더라. 커뮤니티 글은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면 바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나. 그렇게 잊혀지는 게 싫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2~3일에 한 편씩은 쓰는 습관이 생겼다. 이 습관은 지금도 같다.
김동식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표제작이자, 가장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은 <회색인간>이다. 가상의 지저 세계에서 지상의 인간 만 명을 납치해 기약 없는 노동을 강요한다. 그런가 하면 같은 책에 수록된 <식인빌딩>은 도심의 오피스 빌딩에서 수백의 노동자가 갇혀 빌딩의 먹이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에 대한 우화 같기도 하고, 일상의 단면을 꼬집는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실제 노동자로서 그의 생활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의 미래에 공장은 있을까.
Q. 주물 공장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지퍼, 단추, 벨트 버클 등 작은 액세서리를 만드는 공장으로 사장님까지 여섯 명이 함께 일했다. 틀을 만든 다음 쇳물을 퍼서 원심 동력기에 액체가 식으면서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거기서 주로 500도 ℃ 가까운 쇳물을 부어 형태를 만든 다음 연마 작업까지 우리 일이었다. 전문적인 일은 아니었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Q. 하루에 몇 개 정도 생산하나, 일은 많은 편이었나?
물건 종류에 따라 다르다. 하루에 7~800번 정도 쇳물을 붓는 날도 있고, 벨트 버클처럼 크기가 크고 난이도가 높은 제품은 그보다 적었다. 전반적으로 일이 많지는 않았다. 경기가 어려운 편이고, 제품을 계절을 타는 일이라 편차가 있었다. 여름에는 야근을 하기도 했는데 겨울에는 3, 4시에 끝날 때도 있을 정도였다. 일이 없어서 같이 고생한 적은 있어도 일이 많아서 고생한 적은 없었다.
Q. 주물 공장에서 일하기 전에도 다양한 일을 했다고 들었다.
중학교 때 학교에 다니는 게 싫어서 자퇴했다. 인쇄소, 배선, 타일 시공 등을 거쳤지만 모두 오랫동안 일을 하진 못했다. 집이 부산인데, 전문 기술에 돈도 잘 벌 수 있다고 해서 대구에 타일 시공을 배우러 갔는데 결과적으로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잠깐 일할 때도 타일을 나르는 보조 역할이었다. 그러다 시작한 게 PC방 아르바이트였다. 처음 받은 시급이 1900원이었는데, 그땐 시급이 비싸거나 싸다는 생각도 안 하고 일했다. 거기서 3년을 일했다. 노래방 도우미, 조폭, PC방에서 사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났다. 일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돈벌이가 잘 안 됐다. 2006년에 외삼촌 추천으로 주물 공장에 들어갔다.
Q. 공장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가?
작년 12월에 책이 나온 다음 공장에 자리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이미 내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더라. (웃음) 5권까지 책을 출판하면서 약 5000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왔다. 이 돈이면 3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글을 쓰긴 쓸 텐데 언젠가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다른 일을 찾아볼 거다. 사람은 뭘 해도 먹고 사니까.
Q.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작가 마인드와는 다르다.
남이 안 보는 글을 왜 쓸까? 전문 작가로서 완벽한 글에 대한 욕심도, 의무감도 없다. 재미없는 글을 쓴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재미있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글ㅣ정은주 기자(jej@i-d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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