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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밖의 예술가들] 중공업의 작가, 조춘만

IK03034-석유화학ⓒ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춘만 아카이브


2014년 한 권의 사진집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조춘만의 중공업(워크룸프레스)> 커버는 안전모와 작업복 차림의 한 중년의 남자가 먼 곳을 응시하며 서 있다. 사진집 내용만큼이나 강렬한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동 저자이자, 사진 속 주인공이 조춘만 작가다.


초졸 학력으로 조선소 취부사로 취직한 후 배관 용접사로 일하다가 사진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전문 산업 사진작가가 됐다. 이 책은 산업 현장 사진집인 동시에 산업 현장의 일원이었던 조춘만 작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산업 현장의 일원이었다가, 지금은 현장을 카메라로 담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IK09009-선박건조ⓒ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춘만 아카이브


Q. 배관 용접을 했다고 들었다.

어렸을 때 아주 가난한 집에서 4남 3녀 중 6번째로 태어났다. 중학교에 가는 것도 벅차, 자연스럽게 18살에 울산 현대중공업 소조립 하청업체에 취부사(배를 만들기 위해 철판 조각을 도면에 맞게 제작하는 일)로 일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진출이 많아지면서, 배관 용접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들었다.

누가 알려준 적 없이 자발적으로 용접을 배웠다. 당시 오전과 오후, 야간에 10분간 쉬는 시간이 있어 그때를 이용했다. 정유공장, 석유화학 등의 현장을 거치면서 일했다. 대부분 철을 소재로 한 용접 작업을 했는데, 아크와 TIG 방식의 배관 용접을 주로 했다.


Q. 사진은 어떻게 시작했나?

1982년도에 사우디에서 귀국할 때 니콘 FM 카메라를 가져왔다. 그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게 됐다. 그러다 1994년도에 청소년 복지회관에서 사진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본 후 40대 중반의 나이에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IK10049-선박건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춘만 아카이브


Q. 처음부터 산업 현장을 찍은 건 아니라고 했는데.

첫 촬영을 나간 곳이 울산 부곡동이었다. 공단 인근에 있는 철거 지역이었는데, 공단에서 일할 때 살던 동네라 익숙했다. 부곡동을 시작으로 용연동, 황성동, 우봉리 등 공단 인근 철거 지역을 약 8년 정도 카메라로 담았다. 공단은 계속 일을 해왔던 곳이고, 촬영으로 근처에 갈 일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다. 소형 카메라로 담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아 4X5인치 카메라를 산 것도 이때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공장의 이미지는 낯설다. 굳이 덧붙이면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런 공장의 무엇 때문에 조춘만은 카메라를 든 걸까. <조춘만의 중공업>의 공동 저자인 기계비평가 이영준은 “공장의 압도적인 규모를 강조하기 위한 사진이 아닌 철저히 기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이 감정은 산업 현장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애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관점은 기존의 사진이 하지 않았던 산업에 대한 풍부하고 정확한 시각적 표상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산업 홍보나 프로파간다 이미지보다 “디드로의 ‘백과전서’나 인체 해부도를 작성한 의사 베살리우스”의 것과 같다고 평했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게 압도적이면서 강렬하고, 산업현장의 거대하면서 압도적인 느낌이 살아 있다. 늘 전혀 다른 산업 현장의 모습을 다뤄왔다. 그리고 그의 다음 작업 역시 현장이었다.


IK05027-선박자재야적장ⓒ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춘만 아카이브


Q. 일이 아니라 촬영을 위해 산업 현장을 찾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

현장은 사진을 봐도 알 수 있듯 거대하다(웃음) 일하러 다닐 땐 현장 일부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가보니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였다. 누군가 지긋지긋하게 고생했던 곳인데 다시 가고 싶은지 묻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애착이 갔다. 예를 들어, 용접사로서 현장의 강철 구조물을 만들었던 과정이나 시간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과거에 들었던 “용접이 예술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IK11238-석유화학ⓒ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춘만  아카이브


Q. “한 곳을 찍기 위해 스무 번 이상 가”기도 했고, ‘감시의 눈길을 피해 수 킬로 카메라를 들고 뛰며 숨어 다니”기도 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느 작품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수많은 반복을 통해 탄생한 작품들이다. 촬영 허가를 받기도 어렵고, 설령 받는다 해도 촬영 시간이 정해져 있어 최적의 환경을 보장할 수가 없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2년 동안 100번 넘게 찾아가 촬영한 작품이 있다. 물론 그 작품만 촬영하기 위해 간 건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베스트가 아니었다. 결국 경비원의 허락 없이 고층 아파트 옥상 물탱크 위에서 다섯 번 정도 촬영 시도 끝에 건진 일도 있었다.


Q. 사진 작업을 보고, 극단에서 퍼포먼스도 제안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13년 7월에 극단 오시모시스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에 가게 됐다. 프랑스 샬롱 거리극 축제에서 ‘철의 대성당’에 참여했다. ‘철의 대성당’은 한국 등 아시아가 주도하는 철강 산업의 역사를 퍼포먼스로 표현한 작품으로 용접하는 모습을 표현했었다.


Q.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나? 

기계는 생명을 갖고 있다. 촬영에 몰입하면 기계가 살아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대화를 한다는 느낌도 든다. 그럼 촬영 시간은 그만큼 짧게 느껴진다.

삶이 존재하는 한 이 작업을 계속하려고 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산업 현장을 담은 작품을 보여줄 생각이다. 올해는 유럽에 퍼포먼스 및 여행을 다니며 4년 동안 촬영한 내용을 모은 사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글ㅣ정은주 기자(jej@i-d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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