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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Aug 02. 2024

마스터 내러티브: 문화가 '나'를 정의하는 방법

마스터 내러티브, 그 첫 번째 이야기

'문화'라는 말은 얼핏 보면 참 멀게 느껴지는 단어이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 행동, 심지어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의 기준을 제시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오늘은 이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한다.



성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위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회에서 떠도는 '성공한 삶'의 기준이 어느 정도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삶이란 '좋은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들어간 후 결혼하여 아이를 양육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어느 나라를 가든 '성공한 삶' 또는 '좋은 삶'의 기준은 어느 정도 사회에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라면 아메리칸 드림, 즉 노력하여 성취하는 삶을 이루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은 도대체 누가 제시하는 것일까?


미국의 정체성 연구자 맥린(McLean)과 사이드(Syed)에 의하면, 이러한 기준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특히,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부터 인터넷에서 적는 댓글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매개로 만들어지고 퍼져나간다고 한다.


우리가 말하고 글로 적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게 된다면 '커다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커다란 이야기의 예는 인터넷 등에서 접할 수 있는 차별적인 내용을 떠올려 보라. 예를 들면, '지방대에 진학하면 나중에 취업하기도 힘들고 높은 연봉을 받기도 힘드며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후략)...'


맥린과 사이드는 이러한 커다란 이야기를 '마스터 내러티브(master narrative)'라 부른다. 마스터 내러티브는 특정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다. 그 이유는 문화 자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라면을 먹을 때 우리가 자연스레 젓가락을 쓰는 것은 우리는 그러한 문화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마스터 내러티브는 이야기 형태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스터 내러티브는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할까?

앞서 언급한 지방대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유튜브나 구글 등 검색창이 있는 사이트에서 '지방대'라고 검색해 보면, 안타깝게도 지방대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넷에서 흘러넘치는 이러한 지방대에 대한 이야기는 '마스터 내러티브'로 만들어져, 사람들이 지방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떠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등의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성공한 삶'과도 연결될 수 있다. 마스터 내러티브는 그 자체로 권력을 가진다. 성공한 삶의 반대에는 실패한 삶이 있다. 마스터 내러티브는 권력을 가진 집단의 특권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마스터 내러티브가 무서운 점은 사람들이 이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마스터 내러티브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는 (학자들은 '공유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야기이기에, 그것은 마치 '사실'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제 성공한 삶을 위해서는 지방이 아닌 서울로 가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며,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탈로 규정된다. 일탈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스터 내러티브는 그 자체로 권력을 지니고 있기에, 어느 집단은 마스터 내러티브를 통해 열등감, 수치심 등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마스터 내러티브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집단은 사회에서 권력을 쥐지 못한 억압받는 집단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나'를 정의할 때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마스터 내러티브는 차이(difference)를 만든다. 즉, 너와 나는 다르다는 기준을 제공한다. 네가 만약 특권을 가지는 입장이라면, 나는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억압받는 입장에 있다. 특권층은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원하는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피억압층은 그 반대의 위치에 있다. 특권층은 나를 자랑스럽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존재로 정의할 수 있지만, 피억압층은 그 반대일 수 있다.


여기서는 예시로 지방대만 언급하였지만, 사실 우리는 다양한 요소를 지닌 존재이다.

여기서 요소란 '내가 남자인지, 채식주의자인지, 저소득층인지' 등 다양한 사회 정체성(social identity)을 의미한다. 각 요소들은 저마다 마스터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마스터 내러티브의 영향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기준으로 나 자신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다.


마스터 내러티브는 '나'와 '너'를 정의하는 문화적 각본(script)이다.



마스터 내러티브에 대해 공부할수록 문화가 가진 힘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수많은 마스터 내러티브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왔으며, 이것을 통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 평가해 왔다. 마스터 내러티브를 공부하며 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무지의) 차별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마스터 내러티브에 대한 글을 더 써가며, 마스터 내러티브를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심지어 이에 대항할 수 있는지 살펴볼까 한다.



*배경 이미지 출처

http://republicofliteracy.epizy.com/human-in-social-culture/?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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