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로 와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동안 귀찮아서 방치해 두었던 브런치를 켰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기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글 쓰는 건 여전히 형편없지만 오늘도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올해 중순 즈음, 1년 6개월 동안 준비했던 논문을 SSCI 저널(외국의 유명 사회과학 분야 저널)에 투고하였다.
처음은 SSCI 보다 한 단계 낮은 SCOPUS에 투고하려 하였지만, 교수님의 권유로 SSCI에 투고하였다.
논문을 투고할 때만 해도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게재율은 30%였지만 왠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데스크 리젝. 데스크 리젝은 편집자가 보고 해당 논문은 저널의 방향과 맞지 않거나, 저널에 투고할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절하는 것이다.
데스크 리젝을 받고 많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SSCI의 벽은 높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결국 나는 SCOPUS에 투고하였고, 현재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9월 초, 내가 투고했던 SSCI 저널의 부편집장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메일의 내용은 논문을 심사해 달라는 것.
메일을 보고는 처음에 스팸 메일인 줄 알았다.
박사과정생인 내가 논문 심사라니? 지금까지 논문 심사를 해본 적이 없는데, 첫 리뷰를 SSCI에서 하게 된다고? 믿기지 않았다.
내가 논문을 리뷰할 수 있을만한 역량이 있는지 의심이 되었다.
그러나 구글링을 해보니 외국에서는 박사과정생도 SSCI급 저널의 논문 심사(피어리뷰)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 해 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SSCI 저널에 실릴 수 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SSCI 논문 심사가 이루어지는지도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3주였다.
해당 논문은 심사를 거쳐 한번 수정이 이루어진 논문이었다.
대충 훑어보니 내가 투고했던 논문의 방법론과 유사했다. 그러나 내 관심분야와 주제가 달라 생소한 용어가 많았다. 처음 읽을 때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지 않아, 관련 개념을 설명하는 다른 논문들을 먼저 보며 용어를 공부했다. 그 후 반복하며 논문을 읽으며 의문이 드는 부분,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체크를 해나갔다.
리뷰를 처음 시작할 때 '대충 20시간은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하였더니 정말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의 논문을 이렇게 오래 본 것은 처음이었다.
촘촘히 논문 여백에 코멘트를 적어나갔지만, 여러 번 훑어보니 피드백은 5개로 수렴되었다.
논문 리뷰를 제출할 때도 '과연 내 리뷰가 적절한 수준일까?'라는 자기 의심에 휩싸였지만, 머리를 쥐어짜 낸 결과라 나 스스로 납득하기로 하였다.
나는 우연적인 사건을 좋아한다.
그것도 나의 삶의 방향성에 의미를 주는 우연 사건을.
이번 논문 리뷰는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이었다.
논문 게재 실패가 새로운 기회로 찾아오다니, 역시 하고 싶은 것은 해봐야 하는 걸까.
예측할 수 없어서 살아가는 게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