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같은 사무실을 나온지 어느새 1년이 되었다.
새장의 우두머리라 십새라고 이름을 정해주었던 팀장의 잔소리도 이제는 그리워질 정도이다.
아주 조금은 팀장이 왜 그렇게 히스테릭 하였는지 이해가 간다. 항상 똥씹은 표정으로 툭하면 날이 잔뜩 선 말투로 정신차리라고 이딴것도 못하냐고 하는 것이 독립을 해 클라이언트를 마주보고 있자니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간다.
트집을 안 잡히려는 일종의 자기방어이다.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내가 만난 진상 클라이언트는 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했다
1. 계약은 금액을 정해놓는 것이고, 작업범위는 내가 변경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변경한다는 사람
2. 머리속에 원하는 그림은 있지만 이걸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서 그거 있자나요 그거를 계속 외치는 사람
3. 들어갈 기능과 내용은 많은데 디자인은 최대한 심플하게 해달라는 사람
(텍스트만 넣어도 홈페이지가 전공서적 같다.)
4. 끊임없이 미팅을 요청하는 사람, 월, 화, 수 미팅하였으니까 목요일은 쉬고 금,토,일 보시죠.
내가 그런 클라이언트를 겪고 내린 결론은 십새가 히스테릭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끊없는 요구사항을 대응하고, 차단하려다 보니 더 진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한 0.03% 정도는 입장을 이해했다. 그리고 99.07%는 외세(클라이언트)에 힘들어 할때 내부에서 팀원들의 고혈을 짜내던 공공의 적 십새였을 뿐이다.
사표를 얼굴에 던졌어야 됬는데, 던지지는 못하고 마무리를 잘하자는 생각에 더 꼼꼼히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퇴사일이 되자 그냥 원래부터 없었던 듯이 내 삶에 회사가 차지하던 부분을 칼로 뚝 도려내듯이 없어졌다. 평소에 업무로 일상으로 끊임없이 카톡을 주고 받던 카톡방도 울리지 않고, 아쉽다는 문자도 더 이상 오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내부의 적 십새와 외부의 적 진상을 대응하느라 바쁘다.
퇴직 하루차, 이틀차, 삼일차.. 일수가 더 해 갈수록 나의 감정은 사춘기 소녀마냥 울며, 웃으며 희노애락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내가 이렇게 감정기복이 심했나 하고 새삼 놀란다.
예를 들자면 드디어 십새로 부터 해방이다!! 하하 시간될 때 휴가 갈려고 매일 웹서핑만 했던 여행지도 바로 갈 수 있다!! 아 근데 이젠 돈을 못벌지... 라던가, 평일에 침대에 뒹굴며 만화책도 볼 수 있고, 인터넷 맛집 다 찾아다닐 수 있고, 이제 점심시간에 맞춰 불안에 떨며 밥을 안먹고 천천히 음미할 수 도 있어! 너무 행복하다 근데 심심해 죽겠네 라던가...
노트북을 펼치니 3년동안 작업하였던 내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보인다. 수정 17회차, 1818회차, 19회차 진짜 마지막, 20회차 제발 마지막, 21회차 맘대로 해라 이거까지만 해줄꼐, 22회차 마무리를 마구마구 하고 싶다 31회차 난 격하게 마무리를 하고싶다 32회차 이제 그만이라고!! 라고 써진 수십개의 파일이 들어간 폴더를 본다. 그리고 그 폴더가 또 수십개이다. 눈물이 났다.
메일을 열어보니 메일 수신자 80%가 십새로 부터 온 것이고 클라이언트가 15% 사내 메일이 5%다. 십새는 시간이 남아도는지 어쩜 그리 타자속도가 빠른지 아니면 갈굼용 메일 양식을 따로 개인 하드에 보관을 하고 있는지 대단하다. 그리고 짜증이 미친듯이 난다. 당분..당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 한달을 미친년처럼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이제 마음이 진정이 되니 프리랜서로부터 외주를 받아보려고 한다. 우선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 본다. 이메일과 핸드폰은 큼직하게 박아 넣고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려본다.
현실은 시궁창이 아니라 그냥 지옥이다.
사람인, 잡코리아, 인크루트 채용사이트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를 하였지만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내 이력서와 프로필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간간히 연락이 오는 몇몇 프로젝트는 상주를 해달라는 프로젝트가 많았고 대부분 개인이니까 최대한 저렴하게를 요청하였다.
개인 프리랜서라고 할인율 몇프로가 적용되는 할인 상품이 아닐텐데,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개인은 저렴하다라고 판단하였고, 터무니없는 할인율을 적용하여서 후하게 쳐줬으니 잘 부탁드린다고 말을 한다. 그래도 꾹 참고 면접을 보러가면 결정되었다 안되었다 하는 피드백도 없이 질문만 엄청 받고 돌아갔다가 며칠 뒤 다시 전화해 보면 이미 구했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차라리 관심없으면 질문을 하지말던가, 포트폴리오가 맘에 안들었으면 부르지를 말던가, 면접이 맘에 안들었으면 당신은 불합격입니다라고 통보라도 제대로 해주던가. 조직 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개인이 되니까 항상 모든것이 불합리하고 사회적 최하위 약자로 떨어지게 되었다.
억울하고 짜증나 눈물이 나오기 보다는 가슴이 먹먹하고 온몸의 기운이 빠져버린다.
하아.. 내가 이런 대우 받으려고 회사를 나온건가?
그리고 받은 외주 요청서를 본 나의 표정은 딱 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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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는 3편 프리랜서 디자인의 여정(외주작업)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