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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생의 일필휘지 Nov 09. 2023

리더의 뚝심

토트넘 선수들이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호주, 일본 그리고 스코틀랜드 등에서 클럽에서 큰 성공을 거둔 축구 감독입니다. 그러나 그가 23-24년 시즌을 앞두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핫스퍼 감독에 선임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큰 무대 경험이 없는 감독'이라는 이유로 토트넘의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세간의 우려와는 다르게 소속팀 토트넘을 리그 10라운드까지 무패의 성적(8승 2무)으로 이끌며 많은 이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1월 7일(한국시간)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은  리그 내에 강팀으로 손꼽히는 첼시와 리그 11라운드 경기를 맞이했습니다. 토트넘은 경기 시작 후 6분 만에 클루셰프스키의 선제골로 경기를 리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반 33분에 수비수 로메로 선수가 퇴장을 당했고, 곧이어 전반 35분에 첼시의 팔머에게 실점하며 10명의 숫자로 불안한 경기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팀의 중원을 이끌던 매디슨 선수가 발목에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되어 나갔고, 3분 뒤에는 수비수 판더벤 선수까지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핵심 선수들이 2명이나 경기에서 빠지는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후반 10분에는 레프트 수비를 보던 우도지 선수도 파울을 범하며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습니다. 이제 그라운드에 남겨진 선수는 9명. 상대 팀 보다 2명이나 적은 수적 열세와 핵심 선수 두 명이 교체아웃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리그 무패의 위용을 자랑하던 토트넘 선수들은 '일당백의 각오'로 첼시의 공격을 육탄 방어하며 위태위태 하지만 적어도 기싸움에서는 밀리지 않는 투혼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평소 무패의 토트넘이 보여줬던 공격적인 성향의 경기운영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유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퇴장당한 선수가 있는 팀은 부족한 수비 숫자를 채우기 위해 미드필더나 공격수들을 아래쪽으로 내리거나, 수비 라인을 뒤로 물러서서 수비를 단단히 하고 역습 상황을 노리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토트넘의 선수들과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오히려 수비 라인을 위로 올리면서 상대방을 압박하고 지속적으로 공격을 노리는(자신들이 올 시즌에 성공을 거뒀던) 공격적 전술을 그대로 유지했던 것입니다. 9명의 선수가 펼치는 공격적인 경기 운영은 보는 사람으로서는 불안하면서도 감동적인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토트넘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연속해서 3 실점하며 1-4로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수적인 열세와 핵심 선수들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토트넘 선수들은 용맹스럽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설령 5명만 남아있었더라도 계속해서 도전했을 것"이라는 의지를 나타냈고,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매우 힘든 밤이었음에도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긍정적이었던 것은, 토트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동안에 보여줬던 스타일을 유지했고, 홈 관중의 응원 속에서 버티려고 노력하면서 보여준 정신"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또한 영국의 축구 해설가이자 레전드인 게리 네빌은 "1-4로 패배한 팀이 기립박수를 받는 걸 본 적은 처음이다. 두 명 퇴장에도 미친 경기를 선보였다. 토트넘의 자랑스러운 패배다. 포스테코글루 감독도 선수들을 대견하게 생각할 것이다."라며 토트넘의 '졌지만 잘 싸운 경기'에 놀라움을 나타냈습니다.


저는 출근길에 휴대폰으로 이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저는 이 경기를 보며 (불리한 상황에서도) 홈 팬들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자 집념과 투지로 경기에 임했던 토트넘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게리 네빌의 말처럼 1-4로 패배했던 팀이 더 빛나 보이는 경기를 본 것은 제게도 행운이었습니다.


포스테코글루의 경기 운영 방식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2명의 선수 퇴장과 주력 선수의 2명 교체 아웃이 이뤄진 이후에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경기 운영 스타일을 수비적으로 이끌었다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토트넘 선수들이 수비적인 양상으로 경기를 치렀으면 이런 감동이 있을 수 있었을까?'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리더는 조직의 긍정적인 성과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당장의 승리, 그리고 리그 무패의 전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비라인을 내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위기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기본방향을 유지하면서 승리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비록 패배할지라도 또 다른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모멘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패배는 쓰라리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선수들에게 더 큰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만약 눈앞의 승리를 위해 자신들의 색깔을 바꿨다면, 당장은 승리할 수 있겠지만 자신들의 방식과 색깔을 잃은 채 망망대해를 떠도는 표류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물론 리더의 리더십 스타일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주장된다면 그것은 아집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그 방법을 통해서 승리의 경험을 축적했다면 리더는 그 리더십 스타일을 쉽게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뚝심과 의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그것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대패에도 불구하고 많은 홈 관중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승리를 위한 자신들의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며 투지와 집념의 경기를 보여준 토트넘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그들의 행보에 더 큰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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