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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생 Aug 06. 2022

양발잡이에 대한 환상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 손흥민은 2021-2022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에서 23골을 기록하면서 아시아인 최초로 골든부츠(득점왕)를 차지했다. 그가 아시아인 최초의 EPL 득점왕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사실은 유럽 무대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공격수라는 점이다. 보통의 축구 선수들은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쪽의 발 만을 사용하여 슈팅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손흥민 선수는 어려서부터 부친 손웅정 감독으로부터 양발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혹독한 조련을 받았고, 그 결과 2021-2022 시즌 총 23점의 득점 중에 오른발로 12 득점 왼발로 11 득점을 올리는 가장 완벽한 비율의 양발잡이 득점왕이 될 수 있었다.


수비수 입장에서 봤을 때, 보통의 공격수는 한쪽 발을 사용하여 슈팅을 때리는 경향이 있으므로 공격수가 주로 사용하는 발로 슈팅할 수 없는 각도와 위치를 만들어서 공격수의 슈팅을 막아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손흥민 선수처럼 양발을 사용한다면 어느 한쪽을 결정해서 공격수를 유도하는 수비를 구사하기가 여간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축구 지도자들은 선수들이 처음 축구를 배우는 시기부터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있는 방향으로 육성한다고 한다. 반면에 유럽의 지도자들은 주로 사용하는 발의 정교함과 파워를 길러줌으로써 결정적인 순간에 완벽한 킥을   있도록 육성한다고 한다. 손흥민 선수처럼 어느 순간에서도 양발을 사용하여 슛을 날릴  있다면 완벽한 축구선수라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로 사용하는  정확도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발을 모두 잘 쓰기 위해서는 오른발과 왼발의 균형적인 감각을 비롯한 선천적인 재능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지도자나 팬들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을 일반화하거나 또는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비단 축구계의 이야기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선 교육현장, 그리고 기업과 다양한 조직에서 인재를 바라보는 시선인 것 같다. 많은 조직들은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보다는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멀티형 인재'를 기대하고 그렇게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요구들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기보다는 다양한 능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거나 자신의 장점보다는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물론 다양한 영역의 역량을 육성하는 것은 이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모두가 '멀티형 인재'가 되기를 기대하는 문화 속에서는 자칫 자신이 가진 장점마저 희석되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멀티형 인재'가 되기 위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몰두하다가 자신의 장점을 잃는 것보다는 각 개인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여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양발잡이가 되어야 한다!'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강력한 한발'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육성시켜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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