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선생의 일필휘지 Mar 20. 2023

비즈니스석 한번 타고 깨달은 것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인 2019년 8월.


저는 아내와 함께 영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저와 아내는 당시에 심신이 지쳐있던 상태였고, 여행을 통해 뭔가 새로운 전환점을 얻고자 큰돈 들여서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해외여행을 여유 있게 갈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으나, 기왕 가는거 평소보다는 럭셔리하게 flex 해보자는 생각에 비행기 티켓을 비즈니스석으로 예매했습니다.

(물론 편도만 끊은 것과 그 티켓을 마일리지로 구매한 것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하자!'

이 생각은 제가 2007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름에 인생의 목표 중에 하나로 생각했던 것이었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금까지 줄곧 지켜오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3년 정도는 멈췄지만 말입니다).


그만큼 여행하는 것을 즐기던 저였으나, 비즈니스석 탑승은 제 인생 중에 첫 경험이었으며,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앞좌석에 발이 닿지 않다니...

일단 좌석이 엄청 넓었습니다. 다리를 쭉 뻗어도 앞에 좌석에 발이 닿지 않았으며, 이런 경험은 우등 버스를 탔을 때에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세계였습니다. 그리고 식사는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사기그릇에 정성스럽게 준비되었습니다.


좌석은 뒤로 완전히 눕힐 수가 있어서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앞 좌석에 부착된 모니터를 영화나 각종 영상을 보는 용도가 아니라 남은 비행시간을 체크하는 용도로 활용해 왔습니다. 지루하고 힘든 비행이 언제쯤 끝날지 생각했던 것이지요.


"비행시간이 7시간 밖에 남지 않았어!"


처음으로 와이프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동안의 제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조금은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았어!"라는 말을 하던 제가 남은 비행시간을 아까워했으니 말입니다.


그만큼 비즈니스석은 그동안 비행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여행에서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비행을 모두 마친 후, 저는 갑자기 화장실 생각이 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갔습니다. 항공사에서 비즈니스석 승객은 이코노미 승객보다 먼저 내릴 수 있도록 해줘서 입국 수속도 덜 붐비게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지만, 저는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비즈니스 승객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의 머리에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10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시간이 인간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비행 이후에 출입국 심사대에 서는 것을 새로운 삶을 부여받기 위해 대기하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든 간에 결국은 한 자리에서 모두 다 같이 모이게 되는데, 인간의 삶을 경제력 차이로 가치를 매기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인간의 삶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삶을 ‘어떤 삶’이라고 규정하기보다,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이 왜 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어리석게도 비즈니스석을 타면서 약간의 우월감 또는 선민의식 같은 것이 아주 살짝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짧았던 우월감이 출입국 심사대 앞에 몰린 인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신기루’ 였음을 느꼈으며,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해트트릭을 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