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숙소에 머무르기 전에 호스텔에 한동안 머물렀다. 남매가 함께 운영하는 호스텔이었는데 둘은 굉장히 친절했다.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아주었다. 함께 다른 한국인 손님들과 저녁에 맥주를 하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숙소도 깔끔하고 위치도 괜찮았다.
반캉왓이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마다 플리마켓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곳에 간다고 하니 남매 중에 동생인 남자가 자신들이 자전거도 무료로 대여해준다며 자전거를 타고 가라고 했다. 나는 그랩 택시를 불러 갈 생각이었으나 그 말을 듣고 바로 오케이했다. 한국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 옆 도로를 달릴 때 늘 행복을 느끼는 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친절하게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도 넣어주고, 상태도 살펴본 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자전거에 올라 반캉왓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를 했다. 기어도 없는 자전거는 페달 돌리리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너무 뻑뻑해서 페달 한번 돌릴 때마다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
‘아 친절한건 좋은데 이건 아니잖아. 도대체 얼마동안 사용을 안하거야.’
고마움과 원망이 뒤섞인 마음이 오갔다. 다시 가서 무르기도 늦었다. 또 그러기엔 미안했다. 은근히 속상해 할 텐데...
한손으로는 폰으로 구글맵을 보며 열심히 페달을 밝고 밟았다. 숙소에서 반캉왓까지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구석구석 온갖 골목을 지나가며 꾸불꾸불 길을 따라 달렸다. 나는 낭만적인 자전거타기를 상상했는데 지금의 모습은 흡사 체력훈련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보통 내비게이션은 큰 길 위주로 알려주는데, 설정이 달라서인지 구글맵은 자상하게도 나를 아주 작고 좁은 골목길로 계속 이끌었다. 물론 길의 바닥상태는 좋지 않았고, 덕분에 나의 허벅지는 더욱 열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 나는 체력이 필요하다. 장기 거주를 즐기려면 체력도 필요하다. 나는 반캉왓에 가서 여유를 즐길 것이고, 가는 과정은 체력훈련이다.’
이런 생각으로 숨을 헉헉대며,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페달을 눌러댔다. 덕분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치앙마이의 외진 동네의 뒷골목들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한국 닭갈비집도 보았다. 오. 이렇게 떨어진 곳에 한식집이 있다니. 나중에 한번 와봐야지 했는데 결국 가지는 못했다.
마침내 나는 결승점에 도달했다. 이 레이스의 우승자는 나였다. 기뻤다. 그런데 문제는 참가자도 나 혼자라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고독한 레이스에서 승리하였다.
입구부터 사람은 많았다. 차를 타고 온 사람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따가 또 자전거를 끌고 갈 생각하니 약간의 한숨이 나왔으나,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부푼 마음으로 반캉왓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초입에는 노점 음식을 파는 곳들이 있었다. 이따 맛나게 먹어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안내된 길을 따라 구경하기 시작했다. 반캉왓을 구경하며 좀 전에 했던 체력훈련의 피로를 싹 씻을 수 있었다. 응당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주 맘에 들었다. 반캉왓은 치앙마이의 예술인들이 만든 공간인데, 그에 걸맞게 감각적이고 멋들어지게 꾸며놓았다.
그곳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들은 다 수공예품들이다. 이쁘고 독특한 제품들이 많았다. 가격은 꽤 비쌌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날씨도 화창했고, 독특한 창작품도 많았고, 공간들을 잘 구성해놓았다.
커피. 커피가 필요했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으므로 내 몸을 달래줄 카페인과 시원한 얼음이 필요했다. 작고 아담한 그리고 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한 카페로 들어갔다. 책장에는 꽤 많은 한국 책들이 꽂혀있었다. 테이블은 우리가 학창시절에 사용했던 학교용 책상과 의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특했다. 주인에게 왜 이렇게 많은 한국 책들을 갖고 있냐고 물으니 아는 한국 친구들이 주고 갔다며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나도 환한 미소로 아이스 타이 커피를 주문했다.
학교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에 앉아 타이 커피를 마시며 반캉왓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좋았다. 단지 지금 나 혼자라는 것만이 조금은 아쉬웠을 뿐.
그 이후로도 몇 번 타이커피를 다른 곳에서 마셔보았지만, 그곳의 커피 맛이 제일 좋았다. 한 번 더 가서 커피를 먹고 왔어야했는데 아쉽다. 진하고 부드러우며 적당히 달달했던 타이 커피.
그곳에서 적당한 시간동안 한국 책도 보고, 사람들 구경도 하다가 나와서 다시 천천히 반캉왓을 둘러보았다. 급하게 가고 싶은 장소가 생겼다. 음...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느긋하게 찾아보았으나 안내 표지판이 안보였다. 점점 급해졌다. 입구 쪽에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보았더니 아무리 봐도 없었다. 초입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다. 저 안에 끝쪽에 가면 있다고 했다. 나는 급했으므로 그곳까지 갈 시간과 여력이 없었기에, 그곳 말고 다른 곳에는 없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오직 한곳밖에 없다고. 나는 잠시 좌절했고, 그래도 혹시 한번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다. 정말 거기 한군데 밖에 없냐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한군데 밖에 없다고.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고민하였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말이다.
결국 나는 그가 알려준 화장실로 급하게 향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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