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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Apr 15. 2021

운수 좋은 날

코로나 19검사를 하게 된 날.

 치킨을 사서 집에 돌아가는 길, 카톡 카톡 카톡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일 빼고는 연락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렇게 저녁 시간에 카톡이 올 일은 거의 없었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 신호 대기 중에 슬쩍 카톡을 보니 한 장의 사진과 함께, 혹시 모르니 가보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지난주 일하러 서울에 올라갔을 때 잠을 잤던 언니네 건물에서 확진자가 나와 건물 소독을 마쳤고 내일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문이었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코로나 때문에 일도 없어서 어딜 다니지도 않았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매일 제이와 산책만 했는데. 어떻게 겨우 하루 일하러 갔을 때 잠을 잔 건물에서 확진자가 나왔단 말인가. 뭔가 억울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도 열심히 하러 다니는데 난 겨우 하루잖아요. 언니는 지금까지 괜찮았는데 하필 너가 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미안해했다. 언니도 나도 직접 접촉자는 아니지만 언니는 같은 건물에 살고, 나 역시 언니네 집에서 하루 머물렀으니 검사를 받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차 안에 앉아 그 날 이후 내 동선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진 계속 집에만 있었는데. 이번엔 일을 하러 간 거니까 동선도 길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어쩌지? 밥 먹을 때 제일 전파가 많이 된다는데. 부모님께서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걱정이 됐다. 일요일엔 같이 일했던 감독님이 집에 놀러 와 점심을 먹었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누군가 놀러 온 건데. 하필 이렇게 사람을 만났을 때에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니.

 일단 정신을 차리자. 차에 있던 여분의 마스크를 끼고 집에 들어가 가족에게 말했다. 치킨은 접시에 담아 부모님은 거실에서, 나는 주방에서 따로 먹었다. 오랜만에 먹고 싶어서 산 치킨인데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냥 먹었다. 그리고 바로 집에 놀러 왔던 감독님과, 같이 일한 사람 중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언니한테만 연락을 했다. 혹시 모르니 상황을 알고 있고, 내일 검사를 하면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만약 내가 코로나에 걸린다면 내가 아픈 것보다 나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항상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지만 집에 있을 때, 밥을 먹을 때는 벗으니까. 각자 거리두기를 하며 먹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밖에서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쉽지 않은 일이다.

 검사를 받으려니 혹시 검사 비용이 유료면 어떡하지? 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는 받지 못했다. 본인의사로 검사를 하면 코로나 1.5단계에선 유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검색을 해봤다. 다행히 청주는 준 2단계로 보건소에서는 무료 검사가 가능했다. 

 마음 한 켠에는 내가 그 건물에 머문 시간, 특히 공유하는 공간인 대문, 계단 등에는 5분 미만으로 있었기에 괜찮다는 생각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문을 손으로 열었었나? 열고 나서 손은 닦았나?라는 생각을 하며 혹시나 싶은 불안한 마음이 계속 공존했다. 


 이번 일은 하루 일하는 거치곤 페이가 좋았다. 그동안 일이 없었기에 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부탁하는 자리이지만 페이가 좋기에 크루들에게도 선뜻 하루 시간을 내달라고 말하기도 편했다. 오랜만에 내 또래의 사람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일을 하니 나도 몰랐던 내 마음속 답답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확실히 사회생활을 해야 나도 더 발전할 수 있고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처음 접해보는 분야라서 꽤 신선한 자극이 됐다. 일도 어렵지 않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좋고,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았으니 이 정도면 아주 운이 좋은 하루라 생각했다. 

 이렇게 일한 하루가, 아주 운이 좋았던 하루가, 갑자기 코로나란 한 단어로 와르르 무너졌다. 마치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된 것 같았다. 돈 몇 푼을 더 벌려고 하다가 더 큰 슬픔을 맞이하는 김첨지.


 다음 날 오전 9시, 보건소에 갔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이 코로나 검사를 하러 왔다. 가족도 보였고 혼자 온 사람도 있었다. 별일 없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문진을 하러 다가오는 분을 보니 조금 무섭기 시작했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경찰서나 법원에 가면 두려움이 느껴지는 기분과 같았다. 

 tv에서만 보던 새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인적사항과 어떻게 왔는지,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지, 해열제를 복용했는지 여부 등을 묻고 문진표를 작성해준다. 그 문진표를 갖고 기다리고 있으면 내 차례에 이름을 부르고 먼저 체온 확인을 한다. 36.1도 정상체온. 짧은 순간이지만 잠시 안정이 된다. 

 진단키트를 열고 짧은 면봉은 입에서, 긴 면봉은 코에서 검체 채취를 한다. 입은 혀 안쪽으로 면봉을 넣고 여러 번을 돌리고, 코는 안쪽 깊숙이 집어넣는다. 약간의 이물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아프진 않았다. 복불복으로 사람에 따라 아프거나 피가 나는 사람도 있다던데. 베테랑이신 분이 검사를 해주셨나 보다. 검체 채취한 면봉을 밀봉하며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어보셨는데 대답을 하며 긴장이 좀 더 풀렸다. 아마 코로나 초창기에는 이런 대화조차 없었으리라. 

 약 24시간 후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혹시나와 만약에를 오가는 마음. 뭔가에 집중해보려 책을 펼쳤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 6시 30분. 기나긴 하루에 지쳐갈 무렵,  문자가 왔다. '코로나 19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이 한 문장이 어찌나 기쁘던지. 지금까지 받았던 문자 중에 최고로 행복했다. 걱정이 한순간에 솜사탕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아니겠지라고 계속 생각했지만 검사로 확실히 확인하니 더 좋았다. 


 항상 재난문자로만, 뉴스로만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꽤 많은 사람이 감염됐구나 싶었지만 가깝게 느껴지진 않았다. 주변 사람들 중에 확진자가 없어서 정말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당사자가 되자 확 실감이 났다. 코로나가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있고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이제는 일상처럼 돼버렸다는 걸. 그래서 조심한다고는 했지만 경각심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누구나 코로나의 피해자가 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옮길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더욱 조심스럽게 활동하고 개인 방역수칙을 더욱 철저히 지켜야겠다. 

 이제 제발 좀 안녕하자,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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