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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Apr 17. 2021

내 어릴 적 꿈

책 I 문장 수집 생활_이유미

 학창시절에는 항상 장래희망을 조사했다. 매년 바뀌는 나의 꿈은 그 해 어떤 드라마가 유행했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 지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 진학을 앞둔 고 3, 장래희망 조사란에는 광고기획자라고 적혀있었다. 이젠 왜 그랬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지만 원서접수 때까지 광고기획과를 염두해두고 있었으니 꽤 진지했었나보다. 막판에 결국 어문학부로 방향을 바꿔 국문학을 선택하긴 했지만 마음 한 켠에 그 꿈이 계속 남아있었다. 그래서 대학 2학년 때 복수전공을 할 수 있다는 소식에 바로 광고기획과를 선택했다. 나름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고 자부했던 나는 카피라이터를 꿈꿨다. 하지만 3학기를 채우고 광고는 나와 맞지 않는다며 포기 선언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잊혀진 내 수많은 꿈 중 하나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책은 국문과 동기인 친구가 추천해줬다. 주로 소설을 읽는 나는 가끔 환기가 필요할 때 친구들에게 책 추천을 해달라고 한다. 각자 취향이 확고하기에 나에게 늘 신선함을 준다. 이 책도 역시 친구가 아니었다면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는 발견하지 못했을 보물찾기를 한 기분이다.  

 이 책은 온라인 편집숍 29cm 헤드 카피라이터였던 작가가 자신의 노하우를 소개하는 책이다. 그녀는 책에서 늘 문장을 수집한다. 출퇴근 전철에서, 한밤중 침대에서. 그렇게 수집한 문장들은 그녀의 손을 거쳐 상품의 대변하는 카피가 된다. 문장을 수집한다는 생각이 꽤 흥미롭다. 수집한다는 동사는 물건을 모은다는 개념으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취미에 사용하는 단어인데 우표수집, 음반수집, 곤충채집 등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모아서 기분이 좋아질 때 쓴다. 그런데 문장을 수집한다니. 책은 필사를 한다고 표현하고 실제로 필사 책을 판매하기도 한다. 나 역시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은 적어두거나 사진을 찍어둔다. 그 문장들을 실제로 사용하진 않지만 내게 심리적 위안을 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라는 동질감.

 수집한 문장들을 분류하고 적재적소에서 꺼내 쓰는 그녀의 능력이 정말 부럽다. 천리마도 그걸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야 능력을 발휘하듯 좋은 문장도 그걸 알아봐주는 독자가 있어야 문장이 가진 힘을 널리 퍼뜨릴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이미 훌륭한 독자이자 작가다. 그녀의 손에서 좋은 문장은 훌륭한 카피가 되고, 새로운 그 문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된다.  

 잊고있던 어릴 적 꿈을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카피라이터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꿈꾸던 어른이 되었을까? 책을 읽으며 마주한 어릴 적 꿈이 꽤 근사해보였다. 내가 알 수 없는 내 모습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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