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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Apr 21. 2021

책을 대하는 자세

책 I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_노명우

 지금까지 기억나는 어릴 적 기분 좋은 날은 아빠와 서점에 가는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빠와 나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서점으로 책을 사러 갔다. 내가 읽고 싶은 책 한 권, 부모님이 골라주는 책 한 권. 이렇게 두 권을 소중히 들고 집으로 돌아와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은 기억. 이 기억이 아마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게 만든 결정적 장면이 아닐까?

 몇 년 후엔 집 앞에 서점이 생겼고 도서대여점이 곳곳에 생겼다. 500원이면 만화책 1권, 700원이면 소설책 1권을 빌릴 수 있었다. 비디오가 2천원 정도 했었으니 책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오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도서관은 멀었고 집 근처에 서점과 도서대여점이 있었으니 자연스레 책은 사거나 대여해서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바뀌면서 도서관을 유용하게 이용하게 된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서점에는 주로 신간을 가져다놓아 새로나온 책에 눈길이 가는 반면, 도서관에서는 천천히 서가에 꽂힌 책의 제목을 보며 내용을 유추하는 재미가 있었다. 오래된, 모르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알았다. 이후 이사가는 동네마다 도서관을 찾아 회원증을 만들었다. 도서관에는 언제나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무료로 볼 수 있다니. 신간은 늦게 들어오고 대기가 많아 꼭 읽고 싶은 것 위주로 구입했고 대부분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책을 읽을 때 몇 가지 습관이 있는데 먼저, 나는 책을 쫘악 펴지않는다. 그렇지않고 첫장부터 펴서 읽으면 중간쯤 되면 책이 쭈욱 갈라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책을 V자 형으로 약간 구부려서 읽는다. 보기에는 불편해보이지만 읽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이렇게 읽으면 다 읽고 나서도 꼭 새책 같다.

 두번째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거나 빈 공간에 메모를 하지 않는다. 전공서적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책에 펜을 대지 않는다. 대신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나서 일기장에 옮겨 적는다. 이렇게 적어두면 그 책을 찾지 않아도 1년동안 내가 읽은 책의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론 꼭 책갈피를 쓴다. 책날개를 사용해서 읽었던 곳을 체크하거나 접어두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면 나중에 책날개가 부웅 뜬다. 모서리를 접어두면 나중에 그 접은 부분이 눈에 거슬린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읽을 때도 누군가 모서리를 접어놓으면 난 다시 펴서 책을 덮을 때 꽈악 누른다. 그러면 접힌 자국이 조금이라도 더 펴질까 싶어서.

 누가 보면 특이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는 습관이다. 책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다만 나는 내가 산 책이든 빌려읽은 책이든 깨끗하게 보는게 좋다. 중고서적으로 다시 팔 것도 아닌데 무척 소중하게 다룬다. 이런 이유 중 하나는 가끔 도서관에도 서점에도 가기 싫은 때, 책장에 있는 책을 다시 읽기 때문이다. 가지런히 책이 꽂힌 책장에서 마치 새 책을 고르듯 천천히 제목을 음미한다. 기분에 따라 책을 꺼내 처음 읽는 것처럼 다시 읽는다.


 내가 책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해보게 된 건 얼마 전에 읽은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이란 책 덕분이다. 이 책은 사회학자 교수가 운영하는 연신내에 있는 독립서점, 니은서점에 관한 이야기다. 내용 중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서점 방문객 중에 굳이 서점에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강조해 말하는 사람이 방문한다. 그날 이후 그 분은 다신 서점에 찾아오지 않았지만 덕분에 저자는 책을 사면 좋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서 글을 쓴다. 사실 나 역시 도서관을 선호하기 때문에 책을 사면 더 좋은 이유를 쓴 내용을 읽는 내내 글에 저격당해 무척 아팠다.


 "책에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하는 과정을 거치면 구매한 책은 나의 책이 됩니다. 내가 소유한 그 책은 대량생산된 상품이 아니라 나만의 기록과 지적 활동을 담은 물건으로 변하는 거죠."


 "책을 사는 것은 독서의 첫걸음이자 책을 쓰는 사람을 후원하는 행위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나는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독서하고 기록한다. 그런데 두번째 이유는 정말 당연해서 미처 생각치도 못한 이유였다.

 사실 콘서트는 굿즈 판매가 수익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티켓 판매 수익은 대부분 제작비로 쓰이기 때문인데 팬들이 굿즈를 사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일을 할 땐 잘 알게되면서 내가 즐기는 것에서는 무지하다니.  뒤통수를 한 방 크게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글을 써서 수익을 내고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제부터라도 나 역시 작가를 후원하는 독자가 먼저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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