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치영 May 11. 2021

환상 속의 그대

조카와 명작 읽기 I 위대한 개츠비_F. 스콧 피츠제럴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화려함을 앞세우고 제1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이면을 숨기고 있으며 허무함과 혼돈의 시대에 자기만의 꿈에 빠져 살아가는 인물을 그려낸 소설


 매주 금요일, 조카와 소위 말하는 명작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조카는 코로나로 다니던 학원을 가기가 어렵고 백수로 놀고 있는 이모는 오래전에 국문학을 전공했기에 급조된 시간이다. 조카가 어릴 때도 책을 읽어줬고 요즘엔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다른 책을 읽기도 하지만 동일한 책을 읽은 적은 없기에 꽤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 짐작했다.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인 "위대한 개츠비"는 원소스 멀티유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영화로 만들어졌고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2013년에 다시 한번 제작됐다. 그리고 2019년 연말, 우리나라에서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가 올라갔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마치 내가 이 작품을 읽거나 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는 보지 않고 화려한 포스터 이미지만 내가 참여한 공연의 영상 모티브로 사용했었고, 책은 공연을 보기 위해 뒤늦게야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조카와 명작 읽기를 하면서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게 됐다. 

 개츠비 저택에서 매일 밤 열리는 화려한 파티는 재즈의 시대라 불리던 1920년대 미국의 모습과 상류층 사람을 볼거리로 제공한다. 상류층 사람들은 제대로 일도 하지 않는데 쫙 빼입고 매일 밤 파티를 즐기러 나간다. 주인의 초대를 받지 않아도 대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으며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면 된다. 대저택, 요트, 파티, 샴페인 등 듣기만 해도 돈이 철철 넘쳐흐를 것 같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실제로 전쟁 이후 경제적 호황을 누리면서 물질적 풍요 속에 빠져있던 미국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화려한 이미지로 독자를 유혹한다. 그런 호화로운 이미지 속에 사회의 허무함과 어두운 이면(전쟁 이후 잃어버린 가치들_인간 존재의 의미, 꿈과 희망 등)을 숨기지만 작가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슬며시 알려준다. 그 예로 주인공 개츠비는 전쟁에 참여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고 마이어 울프심으로 대변되는 어두운 사업을 해서 돈을 번다. 닉은 증권업에 종사하지만 열심히 일하지는 않고 톰과 데이지는 집안의 돈을 펑펑 쓰며 산다. 그 누구도 미래를 위해 일하고 희망찬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흥청망청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나마 개츠비만이 자신의 꿈,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한다. 

 책을 읽으면 당연히 주인공인 개츠비에 시선이 간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개츠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돈 많고 잘생긴 부자,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려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낭만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후 내가 느낀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 환상 속에 갇혀 있는 인물이다. 그는 데이지를 자신의 결핍(부모, 가정환경, 재력, 교육 수준 등)에 정반대에 서있는 완벽한 이상을 나타내는 상징적 인물로 사랑한 게 아닐까. 어쩌면 한 여자만을 사랑한 낭만적 인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과거가 지나가버린 것이 아니고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개츠비가 자신만의 과거에, 환상 속에 갇혀 사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조카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는 개츠비를,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는 머틀 윌슨을 꼽았다. 비록 거짓말을 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어릴 때부터 노력했고(아버지가 보여주는 어린 시절 계획표), 나쁜 일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그건 데이지를 사랑해서 돈을 번 것이기 때문에 봐줄 수 있다는 것이다. 머틀은 멍청해서 싫었다고 말했다. 왜 말로 하려고 하지 않고 달려오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이야기와 등장인물에 한해서긴 하지만 조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느끼고 생각했다. 비극적인 이야기라 더 몰입하고 개츠비에게 동정심을 가진 것 같았다. 

 작가와 시대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조카가 물었다.

 "근데 이모 왜 개츠비가 위대해? 자신을 속이며 거짓말을 하고 나쁜 방법으로 돈을 모은 거라며? 왜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지?"

 순간 살짝 당황했다. 나 역시 개츠비를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인물로, 과거와 환상 속에 갇혀 사는 인물로 보는 부정적 시선을 가졌기 때문이다. 

 "음. 이모 생각에는 아마도 이때가 전쟁에서 이겨서 승리감을 느끼고 전쟁을 겪은 유럽에 물건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던 시대였잖아. 톰과 데이지처럼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근데 개츠비는 가난하고 군인이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는데 그 사람을 위해서 돈을 벌고 다시 만나려고 노력했잖아. 사랑을 다시 얻기 위해서. 그때엔 이런 생각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거야.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살았고 결국 죽기까지 했으니까. 그리고 개츠비가 처음에 자기를 속이고 거짓말을 했지만 제임스 개츠가 아니라 제이 개츠비가 되려고 엄청 노력했잖아. 가난한 어린 시절, 제임스 개츠일 때 상류층 사람처럼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그 사람처럼 되려고 행동하고 노력해서 제이 개츠비가 됐잖아. 근데 톰이나 데이지, 닉은 막 노력해서 돈을 벌고 상류층 사람이 된 건 아니잖아. 그냥 옛날 우리나라 양반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지위니까. 그러니까 개츠비는 꿈을 위해서 노력하고 결국 이뤄냈고, 돈만 좇는 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추구해야 할 사랑이라는 가치를 위해 살았으니까 위대하다고 말한 것 같아."

 이런 장황한 설명을 했다. 다행히 조카는 잘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모 이제 그만하고 다음 책 고르자."

 잘 이해한 거 맞겠지? 사실 오래전 잠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내가 말하는 것이 정답이 아닌 나의 의견임을, 대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이란 걸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다. 역사도 문학도 선생님이란 위치에서 말을 하기엔 너무나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니 조카라고 다르겠는가? 더욱더 나의 생각일 뿐이라고 말하고 오히려 정말 중요한 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너의 생각, 너의 느낌이라고 수없이 말을 할 수밖에.

 조카와 명작 읽기는 내 예상대로 굉장히 흥미롭고 일주일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됐다.





작가의 이전글 책을 대하는 자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