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던 어린 시절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가족과의 여행일 수도 있고 친구들과 골목을 누비며 뛰어놀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추억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마법의 촉매제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뛰놀던 장소를 보는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어릴 때 듣던 음악일 수도 있다. 나에겐 아카시아 향기가 그렇다.
바람결에 실려온 향기가 내 코에 닿으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그때로 순간 이동한다. 우리 가족이 오래 살았던 아파트 바로 뒤에는 산이 있었다. 그 산에는 큰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띌 만큼 크고 오래된 나무였다. 겨우내 닫혀있던 창을 열기 시작하는 봄이 오면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늘 집 안으로까지 아카시아 향이 깊숙이 들어왔다. 거실에 누워 어렴풋이 잠들어 있는 내가 숨 쉴 때마다 은은한 아카시아 향기가 섞여있다. 주방에서 들리는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 도마에 부딪히는 착착착착하는 칼 소리, 잠든 내가 깰까 작게 소리를 줄이고 TV를 보는 아빠와 그 옆에 자리 잡은 반려견 삐삐와 몽룡이까지. 모든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건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하고 포근한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다. 마치 영화를 보듯 아니 여전히 오감으로 느끼는 과거다.
서울에서 살 때는 집 주변에 산과 나무가 없어서 자주 느낄 수가 없었다. 청주로 돌아오고 시골에서 살다 보니 지금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돈도 안 들고 시간을 내지 않더라도 매일 바람이 부는 어느 순간,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지내던 그때로.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로.
제이와 함께 산책하는 뒷산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많다. 오늘도 제이와 함께 어린 시절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러 산책하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