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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May 24. 2021

지켜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가치는 누가 정하는가?

조카와 명작 읽기 I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_마거릿 미첼

 시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한 여자의 성장 스토리. 사랑을 고민하기엔 눈 앞의 현실과 굶주림을 이겨내야 하는 여자.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 남북 전쟁을 거치며 성장하는 여자들과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이제는 버려야 할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자들. 과연 지켜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가치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생애 단 한 권의 책만 쓴 작가, 마거릿 미첼. 그리고 그 책은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다. 영화로도 흥행에 성공했는데 사실 그 유명세가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난 거부감이 들었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책도 영화도 보지 않았던 이유다. 조카가 재미있을 것 같다고 선택했기에 부랴부랴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손에 들고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간직만 했던 DVD를 찾아냈다.

 얼핏 보면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의 로맨스 소설이라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도 결혼을 세 번이나 하는 여자 주인공만 보자면 단연코 화려한 로맨스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간 시대는 미국 남북전쟁이다. 이것으로 바로 로맨스 소설에서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미국 남북전쟁 소설로 바뀌게 된다. 스칼렛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이 박경리 선생님의 대작, 토지의 주인공 서희였으니까. 그러니 이 책은 역사가 바뀌는 시대를 살아간 여인들의 이야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볼 때 긴 서사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스칼렛과 멜라니니까. 시대가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진취적이고 욕망에 솔직한 스칼렛, 저물어가는 시대의 여인상을 상징하고 굳센 의지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멜라니. 이 두 여성이 남북전쟁을 겪으며 살아가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게 보였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여자들은 성장하는 반면 레트와 애슐리로 대변되는 남자들은 변하지 않는다. 레트는 유일하게 전쟁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인물이고 애슐리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한다. 전쟁은 레트에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고 애슐리에게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만 남긴다. 더 이상 애슐리가 바라는, 살고 싶은 현실은 다신 되돌아오지 않는다. 

 남부가 가진 사상, 전통,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은 멜라니와 애슐리다. 그들은 남북전쟁으로 인해 버려지길 강요받는, 그들이 지켜야 할 남부의 가치를 놓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전쟁 후 멜라니는 그 가치의 구심점이 되어 사람들을 이끈다. 책에서 그려진 남부는 흑인 노예와 계급 사회, 유럽의 귀족 사회, 여성의 역할론, KKK 단 등 많은 부분이 미화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확실히 남부는 구 시대의 가치를 신봉하는 지역이다. 

 이에 반해 스칼렛과 레트는 전쟁이 주는 기회를 확실히 잡는 기회주의자다. 어릴 때부터 교육받은 가치보다는 현실이 중요하고 살아나가는 게 중요하다. 특히 스칼렛은 그 당시 시대가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도 늘 아무 걱정이 없던 과거로 돌아가고 어머니에게 교육받은 요조숙녀가 되고 싶지만 그러기엔 전쟁의 가혹한 현실이 그녀를 붙잡는다. 배고픔을 두 번 다신 자신과 가족들에게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물론 그녀의 허영심도 돈을 벌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조카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곤 영화에서 나온 스칼렛보다 책에 그려진 스칼렛이 더 예쁘다며 그림을 보여준다. 비비안 리의 의문의 1패.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는 멜라니를 선택했는데 그녀는 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대해주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조카는 슬픔에 대한 연민이 강하다. 아마 멜라니가 착하기도 하거니와 마지막에 죽는다는 사실이 더 애잔하게 느껴졌으리라. 싫어하는 인물은 레트. 말하는 어투가 별로라고 한다. 왜 그렇게 잘난 체하냐고. 

 조카에게 남북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얘기를 하다 보니 미국 이주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가게 된다. 왜 유럽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를 했는지 인디언과의 관계와 남북 전쟁과 서부 개척까지. 이 정도면 그냥 역사 수업이 아닐까 싶다. 소설이 좋은 점은 분명 미화가 된 점이 있긴 하지만 재미있게 역사적 사실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 시대가 요구한 여성의 역할까지 이야기하게 됐다. 왜 스칼렛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인정받지 못했는지, 멜라니가 전쟁 직후 어떻게 사람들의 구심점이 됐는지 얘기를 했다. 아무래도 조카도 나도 여성이기 때문에 심도 깊은 얘기까지는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소설 속 서사만으로도 무척 방대한 양인데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과 여성 역할론까지 들먹이니 조카는 어느새 멍해진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보다. 

 우리는 지금도 신사숙녀를 꿈꾼다. 그런데 시대마다 신사숙녀가 뜻하는 바가 다르고 요구하는 가치도 다르다. 남부는 확실히 지나간 시대의 가치를 신봉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그 누가 그 가치는 이제 낡았으니 버려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을까?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속도의 문제일까? 내겐 이 소설이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한 이야기로 읽힌다. 과연 그건 누가 정하는 것일까? 시대가 정하는 것일까? 대의가 정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에도 지켜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가치가 있을까?  

 이런 생각 와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스칼렛의 무한 긍정의 힘이다. 사랑에 대한 판단도, 새 시대의 가치 판단도 오늘이 힘들면 내일 생각하면 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외치는 그녀의 무한 긍정은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소중한 가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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