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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Dec 04. 2021

출퇴근을 5시간 하다 보면...

2021년, 일상에 대한 단상

 청주로 이사하고 장기 공연을 하게 됐다. 이사하면서 장기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일을 거절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6개월의 대장정. 지난여름 연습실에서부터 지금까지 주 6일 5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을 하고 있다. 처음엔 버스로 출퇴근을 하다 공연을 올리고 난 뒤부턴 직접 차를 가지고 다닌다. 공연이 끝나고 내려가면 새벽이라 가족들은 다 자고 있으니까.

 출퇴근을 5시간 하다 보면 첫째, 허리가 아프다. 운전석에 오래 앉아 일을 하는 기사님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더불어 경부고속도로 막히는 구간을 꿰뚫게 된다. 막힐 때쯤 어느 차선으로 가야 조금이라도 빨리 그 구간을 통과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차선을 바꾸고 다른 차들을 지나치면서 느끼는 묘한 우월감은 덤이다.

 출퇴근을 5시간 하다 보면 둘째, 책을 많이 듣게 된다. 운이 좋게 브런치에서 윌라 오디오북에 당첨됐다. 그때부터 시작된 오디오북은 운전을 오래 하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됐다. 음악보단 이야기를 틀어놓고 운전을 하면 훨씬 좋았다. 기본적으로 2시간 이상 운전을 하기에 흐름이 끊기지도 않아 더 좋았다. 출퇴근이 길어지니 종이책을 손에 잡는 시간은 줄었지만 책을 듣는 일은 많아졌다. 좋아하는 책을 성우분들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고.

 출퇴근을 5시간 하다 보면 셋째,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도 집에 도착하기 전에 풀린다.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는 일이 꽤 많다. 아무리 기분 좋게 대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도 있고. 나 혼자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예전엔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그때 이렇게 얘기할 걸 그랬어.', '이렇게 되받아쳤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웃는 낯으로 말했나?' 당시의 상황을 곱씹으며 자책하고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맥주를 사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밤에 운전을 해야 하니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기는커녕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소설이나 음악의 볼륨을 평소보다 살짝 높인다. 차가 막히는 구간을 벗어나고 어둠 속을 뚫고 시원하게 달리면 기분이 점점 좋아진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나를 반기는 제이가 있고. 더 이상 화를 내기가 싫어진다. 어느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는가. 상황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내 기분을 바꿀 수는 있다고. 

 이렇게 출퇴근을 5시간 하다 보면 결국 적응하게 된다. 인간은 참으로 무서운 적응의 동물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내년엔 꼭 장기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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