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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Dec 02. 2021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2021년, 일상에 대한 단상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옆동네 아저씨(?)를 만났다. 제이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타인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물론 사람들은 덩치가 큰 제이를 더 무서워하겠지만. 입마개를 운운하는 아저씨에게 제이는 입마개를 하는 견종이 아니라며 한마디라도 할걸이란 생각을 뒤늦게 했다. 하지만 경험상 이럴 땐 그냥 조용히 아이에게 집중하며 그런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편이 속 편하다. 이상한 아저씨 한 명 때문에 아침 산책의 상쾌한 기분을 망칠 순 없지. 코끝을 스치는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내 기분에 제이까지 휘둘리지 않도록 해본다.

 제이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해외에선 중형견에 속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형견으로 분류한다. 주로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소형견을 선호하며 검은색 개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유기견 중에 크고 검은색 강아지들은 가족을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나 역시 제이를 키우기 전에는 크고 털 색이 어두운 개를 무서워했었다. 큰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가 나를 겁먹게 했다. 이건 아마도 영화의 영향이 컸던 거 같은데 영화 속 악당 집 마당에는 꼭 도베르만 또는 셰퍼드가 있기 때문이다. 착한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는 악당이 키우는 개. 이런 인식이 사라지게 된 건 스페인 순례길을 걸을 때였다. 길을 걷다 보면 집을 지키거나 가축을 모는 큰 개가 길 한가운데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두려워서 다른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함께 가기도 했는데 막상 그 개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쉬러 들어간 바에서는 앉은키가 사람만 한 엄청나게 큰 개가 있었는데 애교가 많은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덩치가 크다고 꼭 무섭거나 사나운 개는 아닌데, 내가 너무 첫인상으로만 개들을 판단했었다.

 생각해보니 덩치가 큰 개들은 억울할 거 같다. 대형견은 3개월만 돼도 소형견보다 크다. 그리고 덩치가 크니 짖는 소리도 크고 우렁차다. 대형견을 키워보니 오히려 소형견보다 덜 예민하고 순한데. 사람으로 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순박한 시골 사람인데. 큰 덩치 때문에 첫인상에서부터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리트리버들이 억울하게 생겼나? 

 그렇지만 나도 큰 개를 막연히 두려워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제이와 산책을 할 때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꽤 조심하는 편이다. 나에겐 귀여운 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덩치가 큰 개일뿐이니까. 대부분 만나는 사람들은 제이를 많이 귀여워한다. 요즘 워낙 동물 프로그램도 많고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대형견을 많이 만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니 무심천이나 대청댐으로 산책을 하러 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특히 다른 반려견을 키우는 분들께서도 꽤 관심을 가지시면서 먼저 다가오시려고 하는데 소형견 친구들은 제이 덩치가 커서 무섭나 보다. 제이를 발견하면 일단 짖고 본다. 소형견이 짖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라는데 내가 그 친구들한테 우리 제이는 착한 아이야라고 말해줄 수도 없고 답답하다. 친구를 사귀기도 전에 너는 무섭게 생겨서 싫다고 거절당한 느낌이랄까. 우리 제이가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덩치가 큰 게 죄는 아니잖아요. 

 첫인상은 꽤 중요하다. 그리고 대부분 외적 요소로 인해 결정된다. 하지만 첫인상이 나쁘다고 진짜 그 사람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첫인상과 다른 의외의 모습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내게 대형견은 딱 그런 존재다. 덩치는 크지만 자기가 작다고 착각하는 순진함을 가진 반전 매력의 아이들. 덩치는 외적인 모습일 뿐이니 대형견을 만나더라도 너무 겁내지 마시길. 먼저 다가오면 꼬리 치며 그 누구보다 반가워할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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