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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Mar 10. 2024

낯설지만 익숙한 그곳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03

 2022년 5월 12일: 루르드 -> 바욘

 루르드에서 바욘으로 가는 날. 아침을 먹고 성수를 받기 위해 다시 성역으로 갔다. 이곳에는 성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꽤 여러 곳 있었고 우리도 도착하자마자 생수를 하나 사서 다 마신 후 계속 생수병에다 성수를 받아 마셨다. 실제로 성역으로 가는 길목의 가게마다 큰 생수통을 팔기도 하고 작고 예쁜 유리병을 팔기도 했다. 나름 고르고 골라 예쁜 유리병 세 개를 샀다. 우리 것 하나, 언니들 것 두 개. 앞으로 걸을 날이 많으니 짐을 늘릴 수가 없었다. 성역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루르드 성녀라 불리는 베르나데트 박물관에 갔다. 부모님은 이곳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동안 성당에서 말로만 듣던 루르드였는데 막상 와보니 정말 좋다고 하셨다. 시작이 이렇게 좋으니 이 기운으로 끝까지 잘 마치기를 소망해 본다.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루르드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프랑스 기차는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연착이 됐다. '그래, 이제 내일 한 번만 더 기차를 타면 앞으로는 걸어갈 것이다.'라며 위안을 삼아 대합실에서 언제 올지 모를 기차를 기다렸다.

 바욘에 도착 후 내일 생장으로 가는 티켓을 샀다. 이곳에는 생장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사실 영어가 통하지 않아도 대충 큰 배낭을 메고 있으면 티켓을 살 수 있다. 물론 사전 예약도 가능하지만 가격도 동일하기 때문에 현장 구매도 괜찮다. 그런데 생장으로 바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숙소에 돌아와 티켓을 확인해 보니 오늘 저녁 기차였다. 아까 영어가 통하지 않아 대충 눈치껏 티켓을 샀더니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얼른 짐만 내려놓고 다시 기차역으로 갔더니 이번에는 영어를 하시는 분이 계셔서 사정을 설명하고 내일 오전 8시 50분 기차로 변경했다. 이제야 한숨 돌렸다. 부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바욘 대성당으로 향했다.

 유럽의 대성당은 오래돼서 늘 공사 중인 것 같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게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엄청 큰 루르드 대성당을 보고 와서 그런 것 같다. 순례길에는 이보다 작은 성당들도 많으니까... 지난번에는 바욘이란 곳을 그저 스쳐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성당도 보고 밀린 빨래도 하러 빨래방도 다녀왔다. 조금 버벅거리긴 했으나 성공적으로 빨래를 하고 저녁으로 케밥을 먹었다. 기차역 근처에 있는데 지난 번에도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했었다. 들어가서 주문하기엔 좀 무서운 느낌이 있지만(이건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다. 점원은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다.) 가격대비 푸짐하고 맛있다. 부모님도 좋아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침대에 누워 까친연 카페도 보고 오픈 카카오톡을 보며 앞으로의 일정 및 요즘 순례길 분위기를 살폈다. 우리처럼 코로나 때문에 포기했던 순례자들이 걷기 좋은 올해 5월 꽤 몰렸다는 소식이 있었다. 사람이 많아 초반에는 알베르게 등 예약이 필수라고. 부모님과의 순례라 론세스바예스까지는 예약을 마치고 왔는데 앞으로도 미리 예약을 해야 할까? 밖에서 주무시는 걸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위해 최대한 단독룸을 잡으려고 노력하긴 하는데... 그러다 보니 숙박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들 것 같다. 그래도 걷기도 힘드실 텐데 쉬는 곳이라도 편하게 잡아야 하리라.

 그리고 최근 순례길은 카드를 선호한다고도 했다. 4년 전만 하더라도 현금을 뽑아서 다녀야 하고 큰 액수는 시골 마을에선 사용하기 어렵다며 대도시에서 잔돈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 많았는데 역시 코로나라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는 현금이 불편해지나 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멀티카드에 유로를 충전해 왔다. 미리 계획해 둔 여행이어서 조금이라도 유로가 쌀 때 조금씩 환전해서 넣어두었다. 일반 신용카드를 쓰면 결제가 될 때의 환율로 적용이 되기 때문에 같은 값이라도 조금씩 유동성이 있었는데 멀티카드로 사용하면 한국에서 현금카드 쓰는 것처럼 사용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내일 드디어 순례길, 프랑스길의 시작점 생장으로 간다. 순례자로 입학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나에겐 의미가 큰 이번 여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하루하루 집중해서 즐겁게 걷자.  


* 바욘 숙소 정보 : 호텔 코트 바스크

 바욘역에서 길 하나 건너면 있는 아주 작고 오래된 호텔이다. 순례길 정보를 보던 블로그에서도 나오고 한국 사람들에겐 꽤 알려진 곳이다. 우린 3인실에 묵었고 가격 대비 나쁘지 않았다. 호텔 직원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고 객실에 드라이기는 없으나 로비에서 요청하면 드라이기를 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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