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04
2022년 5월 13일 : 바욘 -> 생장 피에드포르
바욘역에서 기차를 타고 CAMBO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생장에 도착했다. 지난번과 다른 루트로 우여곡절 끝에 순례길 출발점인 이곳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그래도 좀 더 익숙한 곳이랄까. 버스에서 내려 망설임 없이 앞장서서 순례자 사무소로 향했다. 오전 첫차를 타고 와서인지 기다림 없이 바로 등록할 수 있었다.
배낭 무게도 재보고 신중하게 조가비를 하나씩 골랐다. 크리덴시얄(순례자 여권)과 같이 순례자임을 증명하는 증표 같은 것이라 맘에 쏙 드는 걸로 고르고 싶었다. 우리는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을 하나씩 골라 배낭에 소중하게 넣고 숙소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오전 영업 종료 전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체크인을 오후 4시라 우선 짐만 맡기고 생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생장을 둘러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온전히 하루를 이곳에서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55번 공립 알베르게를 지나 성곽에 올랐다. 시내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꽤 높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한국에서 온 모녀와 삼 남매끼리 온 분들도 만나 인사를 나눴다. 걷는 속도에 따라 자주 만나게 될 수도 있는 분들이다.
잠시 큰 나무 옆 벤치에 앉아 점심 먹을 곳을 검색했다. 럭비장 앞에 있는 "cafe des sports"라는 동네 맛집이었다. 동네 맛집이니 영어로 된 메뉴판도 없었다. 그래도 친절한 주인 덕분에 적당히 주문을 할 수 있었다.
까르푸에 가서 이틀간 먹을 간식과 저녁거리를 산 후 성당으로 향했다. 천주교 신자라면 이곳에서 출발을 기념하는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땐 성당문은 열려있지만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묵주를 꺼내 조용히 기도를 시작하셨고 나는 조용히 앉아 있다가 스태인드글라스 사이로 빛이 들어와 밖으로 나갔다. 예전에 왔을 땐 비가 와서 아름답고 작은 이 마을을 즐기지 못했었는데... 해가 쨍한 이곳은 정말 예쁜 마을이었다.
4시에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했다. 깔끔하고 마음에 쏙 들었다. 부모님이 씻으시는 동안 론세스바예스까지 동키 서비스 신청을 완료했다. 이제 정말이지 출발만 남았다.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내가 아프면 안 되니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2018년 5월 한여름밤의 꿈처럼 좋은 기억만 남게 된 이 길을 부모님과 다시 걷게 되다니 정말이지 꿈만 같다. 이번에도 좋은 꿈 꾸다 가고 싶다. 내 인생에서 늘 부모님이 내 길잡이가 되어주셨으니 지금 이곳에서만은 내가 두 분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생장 숙소 정보: HOTEL ITZALPEA
겉모습은 낡았지만 안은 깔끔하고 좋았다. 계단만 있는 게 조금 아쉬웠으나 주인이 친절하고 무거워 보이는 짐은 직접 옮겨주겠다 말한다. 조식도 깔끔하고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