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06
2022년 5월 15일
걷기 2일 차: 보르다 -> 론세스바예스
아침 식사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경치는 역시 좋았다. 아침은 따뜻하게 데운 빵과 시리얼, 주스와 요거트가 나왔다. 간단하지만 정갈하게 차려졌다. 산에서 먹을 샌드위치 도시락까지 받고 난 뒤 천천히 길에 올랐다.
오늘의 복병은 심하게 부는 바람이었다. 거의 태풍 수준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건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특히 엄마는 배낭을 메지 않아서 더욱 쉽지 않았다. 배낭을 멘 나조차도 흔들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경치는 정말 멋있었다. 지난 번에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풍경을 눈에,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경치를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꾸준한 오르막과 내리막에 부모님은 꽤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도 이 상황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블로그에서만 보던 맑은 하늘과 멋진 경치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너무 힘들고 춥다라고 느낄 때쯤 나타나는 푸드트럭에서 따뜻한 차와 핫초코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산 정상에서 도시락으로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두 분이 몸이 아프고 난 뒤에 처음으로 오르는 높은 산이다. 이틀에 나눠오르긴 했으나 잠과 식사가 편안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꽤 힘드셨을 것이다. 아빠도 자신이 이렇게 높은 곳에 와 있다니 성취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이제는 긴 내리막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내리막 방향을 잘 잡아야했다. 지난 번에는 안개에 비가 내려 길을 잘못 들어서 경사가 심한 내리막으로 갔다. 이번에는 엄마 무릎을 위해서라도 좀 돌아가지만 내리막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했다. 날씨가 맑으니 바닥 표시가 잘 보였다.
론세스바예스는 역시 사람이 많았다. 40여분을 기다려 체크인을 완료했다. 2층 침대 두 개가 마주보는 형태로 되어있는데 우리 침대는 1층 하나와 2층 두 개였다. 그 중 하나는 또 2칸 정도 떨어져있는 침대였다. 좀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빨래를 맡기러 내려가보니 구관까지 열려있었다. 역시 5월, 사람이 많은 때인가보다.
식사를 마치고 와서 내일 예약한 수비리 알베르게에 좀 늦게 도착할 수도 있다는 메일로 미리 보냈다. 이곳에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팜플로냐 숙소를 예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간 도미토리에 묵었으니 팜플로냐에서는 방을 따로 쓸 수 있게 호텔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부모님이 좀 편하게 씻고 쉴 수 있으실 것 같다. 아무래도 부모님과 다니다보니 자는 컨디션이 제일 신경쓰인다. 잠을 잘자지 못하면 컨디션도 나빠지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일정과 숙소를 잘 생각해봐야겠다.
순례길 초반 가장 힘든 구간을 무사히 마쳐서 감사하다. 물집도 생기지 않고 근육통이 심하지도 않다. 쉬엄쉬엄 걷고 많이 쉬고 천천히 걷자. 그게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 정리하고 일기를 쓰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다양한 언어가 들린다. 뻥 뚫린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같이 있다보니 말하는 소리가 울려서 들린다. 이제야 까미노에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숙소 정보: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론세스바예스에는 알베르게와 호텔이 있다. 양쪽다 예약이 가능한데 알베르게는 총 베드 수에 몇 프로 정도만 예약을 받는다고 알고있다. 신관과 구관이 있다. 순례자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대형 벙커형 알베르게.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관리가 잘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