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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Mar 20. 2024

순례길에서 우선 순위는 무엇일까?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13

 2022년 5월 22일

 걷기 9일 차: 로그로뇨 -> 나바레떼 -> 나헤라

 로그로뇨도 큰 도시라 화살표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는 다행히 도심 끝에서 머물러서 금방 도심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순례길을 큰 공원을 따라 외곽으로 나가는 것인데 일요일이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다양한 순례길 표시>
<우연히 만난 산책냥이>
<고속도로를 따라걷는 심심한 길을 순례자들이 재치있게 꾸며놓았다.>

 나바레떼로 들어가는 마을 초입에서 자전거를 타는 65세의 한국분을 만났다. 아빠가 배낭에 태극기를 붙여놓고 다니는 걸 보고 한국사람이란 걸 알아봤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이 한국에서 타던 자전거를 직접 가지고와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혼자 오셨는데 이곳에서 친구들을 사귀어서 같이 타고 다니신다고. 참 건강하고 유쾌한 분이셨다.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인삼 사탕을 드리고 서로의 길을 축복하며 헤어졌다. 

<나바레떼로 진입하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
<옛 순례자 병원 터>

 나바레떼에 도착했다. 예전에 마을 초입에 있는 바에서 오렌지 주스를 맛있게 먹었었는데 아쉽게 문을 닫은 것 같았다. 마을 성당 옆에 있는 바에 들어가 쉬면서 마을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봤다. 

 어젯밤 블로그에서 살펴봤는데 이 마을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는데 순례자를 위해 버스 위치 및 시간 안내를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성당 앞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왼쪽으로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다. 자원 봉사자로 보이는 여성 분이 앉아계셨는데 아쉽게도 11시 15분 버스는 지나갔다고 했고 오후 3시 15분 버스가 있다고 했다. 아, 우리가 11시 5분쯤 나바레떼에 도착했는데 정말 아쉬웠다. 구글 지도에서 보여주는 정류장 위치와 이곳에서 알려준 버스 정류장 위치는 차이가 있었다. 지도에 다시 한 번 정류장 위치를 확인받은 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시간이 많이 남으니 부모님은 성당을 구경하고 주일 미사를 보겠다고 하셨다. 

<성당에도 방명록이 있었다. 엄마가 적기 직전에 어떤 한국분이 다녀가셨나보다.>

 부모님이 미사를 드리는 동안 난 성당 앞 공원에 앉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 길 위에서 무엇을 우선 순위로 두어야할 지 늘 고민이 된다. 부모님 입장에서 이 길의 우선 순위는 무엇일까? 길걷기 또는 성당 투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휴식, 여행 등. 아빠는 내가 길을 걷던 2018년 카톡으로 아빠도 언젠가 이 길 위에 오르고 싶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시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우린 대화가 많은 가족은 아니다. 나 역시 살가운 딸은 아니기에 이번 여행 또는 순례의 목적에 대해 부모님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부모님은 그저 너가 와봤으니 너 말대로 따르겠다라고 하셨다. 물론 저녁 식사 때마다 내일 일정에 관해 가볍게 다음 날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고도차가 어떤 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 지 등.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아니 거의 전적으로 일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부모님에게 좀 더 좋은 것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인지, 멋진 풍경을 보며 조금씩 걷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인지. 걷는만큼 잘 쉬는 것도 중요하고 도시의 문화나 유적을 구경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떤 것을 우선 순위로 둘까? 이 길 위에서 가장 경험해보고 싶으신 게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내 경험을 토대로 일정을 짜고 있는데 지금은 오전 걷기 좋은 시간이나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코스는 걷고 오후에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마 메세타에 들어가면 마을 간 거리가 꽤 멀어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메세타를 조금 점프하고 이후 구간을 천천히 걷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지만 메세타가 주는 매력이 꽤 크기에 부모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곳은 순례길이고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걷는 것이 어떨까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어떤 한 구간을 점프하고 싶지는 않다. 부모님께서 능동적으로 의견을 주시면 좋겠지만 그건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힘든 일정을 따라오시고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란 아니까. 어떤 것이 더 좋다는 확신은 없지만 그저 이 길 위에 우리가 함께 있음에 감사하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까미노를 즐기자란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다이어리를 적고 미리 버스 정류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배낭을 메고 지도를 보여 이러질 둘러보니 마을 주민 분이 어디 가냐고 물으시더니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버스를 타야한다고 하셨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여기를 알려줬다고 하니 뭔가 미심쩍어 하시면서도 그럼 기다려보라고 하셨다. 이 때부터 내 심장은 쿵쾅쿵쾅,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이지? 인포메이션 센터에 다시 가봤더니 휴일이라 이미 문을 닫았다. 

 기다리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지라며 우리는 버스 정류장 옆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3시 30분이 넘어가자 더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점심을 먹은 바에 들어가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드렸다. 택시를 타니 15분 만에 나헤라에 도착. 이럴 거면 처음부터 택시를 탔지. 그러면 일찍 도착해서 여유있게 나헤라를 구경하고 쉬었을텐데...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아 짜증이 났다. 그래도 부모님은 이것도 경험이고 버스를 기다린 덕분에 주일 미사도 드릴 수 있었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도 못해도 오후 2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곳을 오후 4시에 도착하다니... 


 나헤라는 꽤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순례길에서 가장 특이한 풍경을 가진 마을인데 마을 앞에 흐르는 강과 마을 뒤의 붉은 암석산이 대비를 이뤄 멋진 경치를 보여줬다. 

 일요일이라 슈퍼도 문을 닫아서 그냥 빨래나 하고 방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네잎클로버를 찾는 엄마>

  순례길 단톡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추천해준 양고기 집을 갔다. 저녁 영업 시간이 조금 늦은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먹어본 순례길 음식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순례길에서 먹은 고기 중에 가장 맛있었다.>

 오늘은 13km 정도를 걸어 체력적인 피로감은 적었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등 심리적인 피로도가 상당한 날이었다. 나헤라의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이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에 감사하다. 



*숙소 정보: PENSION SAN LORENZO

 펜션 1과 2가 있는데 우린 1에 머물렀지만 2가 더 신식 건물이다. 1은 엘리베이터가 없고 2는 있다. 세탁기도 2에 있다. 방은 좀 작지만 깨끗하다. 조식도 나쁘지 않았다. 나헤라 알베르게는 예전에 왔을 때도 예약하지 않으면 베드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머무르는 마을이었다. 그러니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지 않겠다면 예약을 필수인 마을. 얘기를 들어보니 코로나로 인해 공립 알베르게 베드 간격이 넓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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