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나인 동시에 아무나가 아닐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오늘은 진짜 보지 말아야지”
굳은 다짐이 무색하게 나의 손은 이미 온라인 서점의 페이지를 열었다. 몸이 뇌의 지시를 거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마음을 헤아린 것인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오늘의 순위를 확인한다. 출간 이후 나는 매일 아침 조금 기뻤다가 많이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어제는 YES24의 순위가 조금 올라서 좋았다가 알라딘의 순위가 떨어져서 속상했다. 오늘은 교보문고 매장의 신간 판매대에 누워있던 책이 서가로 이동한 것을 확인하고 슬프다. 아무래도 누워있는 책이 서있는 책보다 광고효과가 좋을 텐데. 그래도 매장 내 잔고가 두 권 줄었으니까 이건 좋은 일이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일에 나는 이렇게 꾸준히 희비가 교차하고 좌절과 응원을 계속한다.
출간되자마자 온라인 서점의 순위권에 사뿐히 안착한 책들을 한 번 더 쳐다본다. 베스트셀러에 오랫동안 머물며 꿈쩍이지 않는 책들은 괜히 밉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들, 거기에 어울리는 대형 출판사들, 수십만의 SNS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들. 팝업으로 광고가 팡팡 터지고, 제일 첫 화면에서 뽐내고 있는 책들을 보면 어쩐지 나는 내 책에게 미안하다. 다양한 기획전과 추천의 칸에서도 조명 받지 못하는 책이 내 책뿐만이 아닌데 괜히 서글퍼지다가 다소 억울하기까지 한다. 아, 이래서는 안되겠다. 마음이 못난 욕심을 부리려고 들면 나는 어린 날의 다짐을 다시 들춰본다.
“언니, XX 학번에 oo 있잖아요, 고시반 들어갔다고 했던. 걔 붙었대요. 올해 25살인가 그런데 5급이래요. 대박이죠? 완전 부러워요.”
어린 후배의 고시 합격 소식에 학과 커뮤니티가 술렁였다. 어린 나이, 공무원, 그것도 5급, 고위 공직자. 많은 이들이 함께 기뻐하기 보다 부러워했다. 기꺼이 축하하기 보다 자조와 비아냥을 섞어 뱉는 못난 말들도 많았다. 일일 달력을 뜯어내는 마음으로 녹록하지 않은 사회생활을 버티던 나도 그녀가 너무 부러웠다. 갑자기 내 일이 너무나 하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일기장에 내 마음을 꾸짖고 새로 다듬었다. 그녀의 고생스러운 노력과 애쓴 시간을 무시하지 말라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결과만 부러워하는 건 못난 마음이라고. 게다가 내 목표가 고시 합격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갑자기 남의 성취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나는 내 노력과 시간으로 나의 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이십 대 후반의 나는 다행히 마음이 건강했다.
유명인이 유명해지기까지 무명했던 시절을 어떻게 버텼는지 나는 모른다. 수많은 팔로워를 만들기 위해 인플루언서들이 쏟은 노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의 광고비를 쓰는지 모른다. 남들의 애쓴 시간과 노력과 심지어 돈을 헤아려보지 않고 부러워하기만 한 나를 반성한다. 내가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거기에 내 모든 것을 걸어본 적이 없다. 분명 책 쓰는 동안 나도 애쓰고 노력했으나 노력에 비해 지금의 욕심은 너무 크다. 오히려 나는 본 업 덕분에 크게 쪼들리지 않게 살았고 여행도 잔뜩 했다. 그리고 책까지 나왔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베스트셀러가 부러우면 지금부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노력을 하면 된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으면 영향력을 키우면 된다. 어디서든 소개되고 싶으면 소개될만한 글을 쓰기 위해 나를 닦으면 된다. 시간과 노력이 쌓이면 언젠가 빛날 날도 온다.
누군가는 ‘아무나’ 책을 내는 세상이라고 했지만, 책을 내본 나는 안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꾸준히 쓰는 사람은 드물다. 꾸준히 쓰는 사람은 많지만 책으로 묶는 사람은 드물다. 어디 글 쓰는 일만 그런가. 세상의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도 모두 아무나의 시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무나인 동시에 아무나가 아닐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서 아무나에서 한발 나아가는 일.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다. 밉게 쪼그라드는 마음을 탁탁 털어서 펴야겠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글을 필사해 보고, 인플루언서들의 홍보 전략을 따라해 봐야겠다. 부러움 보다는 벤치마킹을 택하겠다. 이렇게 다짐하는 나는 벌써부터 ‘아무나’에서 한 발 걸어나와 ‘특별한 나’로 향한다.
p.s.
'이 여행이 더 늦기 전에' 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엔 가족에세이에 더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나에서 아무나를 거쳐 특별한 나로 가기 위해 꾸준히 글을 씁니다. 공감, 공유, 댓글, 관심작가 등록 같은 것들이 큰 의지와 응원이 됩니다. 예전엔 남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청유를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보면 저도 좀 뻔뻔한 사람이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