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성장 Dec 18. 2022

엄마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엄마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시간이 몇 시인 대 왜 아직 안 들어와?"

"엄마. 나  방에서 자고 있어.  지금 새벽 7시야."



잠자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엄마이기에 방으로 갔다. 지금은 새벽이고 난 어제저녁 먹고 바로 들어왔다고. 엄마는 지금 저녁인 줄 알고 한 숟가락 뜨셨다고 한다. 군말 없이 아침 약을 챙겨드렸다. 최근 부쩍 이런 일들이 잦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진이 빠진다. 어제 아침엔 리모컨이 없어졌다고 내가 가져갔냐고. 바로 옆에 놨었는데 발 달린 게 아니면 어딜 갔냐고 성질을 내며 한참을 뒤적거렸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으니 내가 가져간 거라던 리모컨은 엄마의 이동식 변기 안에 빠져 있었다. 



이런 일들은 예전부터 빈번했다. 성격이 불같이 급한 성격에 뭐만 없어지면 내가 가져갔다거나 버렸다고 호통을 친다. 화가 치밀어 가슴을 콱 누른다. 참아지지 않는 날엔 나도 함께 고함을 치며 싸우기도 한다. 그러고는 이내 위가 뒤집어진다. 나도 안다. 엄마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답답한 심정을 친구들과 이야기하곤 한다. 내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한동네에 살아서 우리 엄마에 대해 잘 안다. 목소리 크고 성질 급하고 조금만 당신 생각에 빗나가면 고함을 치시던 엄하던 엄마였다. 사실 나는 엄마가 무엇을 하든 간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어가는 반면 엄마는 일거수일투족 간섭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툼이 잦았다. 어쩌면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표현이 맞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너만큼 하면 우리 엄마는 나를 업고 다닐 거야."

"지금보다 더 어떻게 잘해?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무 자책하지 마."



엄마와 투닥거린 날 마음이 좋지 않은 나에게 친구들이 한 말이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친구는 나이 들면 성격이 온순해지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기질이 더 강해진다고 했다. 3살 버릇 죽을 때까지라 했다. 나이가 드니 몸도 생각도 다르니 불안한 마음에 어쩌면 더 그럴 거라 했다. 



엄마는 90세다. 간간이 아프긴 했지만, 큰 병이 있어서 나를 걱정시킨 것도 아니고  웬만한 일은 나를 도우려 하신다. 그 과정에 불같은 성격이 문제이긴 하지만. 병원 신세 안 지고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어쩔 땐 짠하면서 장하기까지 하다. 



"이 시간에 어딜 가니?"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때 주말에 낮잠을 자다가 지각하는 줄 알고 헐레벌떡 일어났다. 교복을 입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 저녁인지 아침인지 구분을 못 했던 것이다. 도착 전에 동네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도 두세 시간은 온전히 날렸을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느꼈던 불안한 마음은 잊지 못한다. 



엄마의 불안감은 지금 그때의 나보다 몇천 배는 더 하겠지. 

노인들에게는 치매가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병이라 한다.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바보처럼 죽어간다는 사실이 공포에 가까운 것이다. 치매에 걸릴 바에는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엄마였다. 엄마가 점점 정신 없어지는 것이 엄마에게는 큰 걱정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이 듣기 싫어 스트레스 받는 내가 걱정되었을 뿐이다. 자식이라는 것은 이런 거구나. 새삼 죄송스럽다. 



나의 시간과 엄마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이제는 내가 엄마를 안아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화가 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