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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백수

돈많은 백수



얼마 전 딸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꿈은 없고, 그냥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어."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모두가 되고 싶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지 못하는 그 백수. 

'너는 역시 내 딸이다'라고 생각했다. 요즘 회사에 나가기 싫어 꾸역꾸역 출근하느라 지각을 자주 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집에서 쉴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참이었다. 남편 혼자 벌어서는 네 식구가 먹고살기 모자라고, 아이 교육비도 있고, 노후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했다. 사실 열심히라고 하면 양심에 찔린다.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히 일했다. 한 달에 한 번 급여 일이 돌아올 때면, 약간 사장님한테 미안한 감정도 들긴 했다. 한 달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돌아왔다. 

직장 생활 1년. 3년. 5년. 7년 만에 오는 권태기. 나 같은 경우, 회사 생활 권태기가 대부분 홀수에 왔다. 회사를 옮긴지 만 3년이 되었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치셔서 병원도 다니고, 아침저녁 식사도 챙겨드려야 했다. 평소에 살림을 도맡아 하셨던 엄마를 대신해, 설거지 청소, 빨래도 해야 했다. 사춘기 딸아이 비위도 맞춰야 하고 사달라는 것도 부족함 없이 사줘야 했다. 직장만 달랑 다니던 내가 이것저것 하려니 너무 힘이 들었다. 남들은 회사도 다니고, 집안일도 잘하고, 부모님 잘 모시고, 자식도 잘 키운다는데... 내가 무능력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지치기만 했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무기력이 찾아왔다.

나야말로 백수가 되고 싶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고 싶다. 투정 부리는 나에게 친구는 '이 코로나 시국에 니가 미쳤냐,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주 배가 불렀다'라며 핀잔을 주었다. 치과를 다니는 친구는 환자가 없어, 근무일수를 조정해서 급여가 줄었다. 아차, 투정 부릴 번지수가 틀렸다. 나도 잘 안다. 다들 힘들 때,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뭔가 머리끝까지 가득 채워진 기분이다. 직장 생활 24년 차.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막상 쉰다고 해도 집안일을 해야 하니, 백 프로 쉬는 건 아니겠지만. 간절히 쉬고 싶다. 

집에는 미안하지만, 코로나로 상황이 상황인지라 '회사에서 나오지 말라 했다'라고 거짓말을 해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냥 그만두면, 엄마도, 남편도 싫어할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싫은 소리 안 듣고 그만둘 수 있겠지? 우리 가족이 한 달을 살려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기를 두드려 본다. 대출금, 보험료, 카드대금, 생활 공과금 등등등 아이 교육비까지 계산해본다. 현실이 가로막는다. 열심히 일해야지. 정신 차려라. 현실은 나를 달리게 한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과연 내 딸뿐일까? 요즘 아이들은 너무 똑똑해서 어른의 생각을 뛰어넘는듯하다. 현재, 딸과 나의 바람은 같다. 돈 많은 백수. 로또나 한 장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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