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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홀로아리랑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정말 친한 배꼽 친구랑 심하게 싸웠다. 성당에서 여름캠프를 갔었는데, 친구가 불렀던 노래가 '홀로아리랑'이었다. 그때는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에, 캠프에 와서 분위기에 안 맞게 홀로아리랑이냐며, 비웃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왜 싸웠는지조차 기억도 안 난다. 그 이후에, 어디에서 홀로아리랑 음악이 나오면 마음 한편 이 애린다. 


우리는 배꼽 친구에 걸맞게 오래된 친구다. 나이로만 따지만 38년째 친구. 7살 때부터 동네에서 가깝게 살고, 때리고 맞고 자란 사이다. 집에 무슨 사정이 있는 일거수일투족 다 아는 사이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내 친구가 '많이 감성적이고 성숙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조그만 얼굴로 거센 바람'을 맞고 자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명 한명 외로운 섬이었다. 아리랑도 둘이도 아닌 홀로 아리랑. 가난하고 불우한 상황에 외롭게 자랐다. 그 시기에 우리 둘은 큰 시련을 겪었다.


묻어두고 지내던 일이다. 그 친구와 또 다른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중학교 초에 아주 잘 붙어 놀았다. 셋이 놀면 잘 싸우기도 해서, 둘씩 노는 날이 많았다. 그 친구 집에 가서 자주 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매일 놀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고, 학교로 형사가 찾아왔다. 그 시기에는 얼떨떨하고, 뭐가 뭔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밴댕이 소갈딱지여서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얼마 후, 뉴스에 떠들썩하게 친족 살인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삼촌이 조카를... 그때 나는 전혀 현실감각이 없었다.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일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친구. 우리 둘은 그렇게 같은 아픔을 가지고있으면서도,  그 일로는  서로 말을 아꼈다.


고등학교를 서로 다른 곳으로 가며,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도 간간이 연락은 하고 지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면서 연락이 잦아졌고, 또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났다. 내가 바보인지, 그 친구가 바보인지...  상처를 서로 안고 살았다. 그 이야기를 누구도 먼저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다. 서로 위로를 해도 모자랄 판에 싸우고, 연락도 안 하고. 지금은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는 지금도 조심스러워 못하고 있다.


말로는 '뭐 인생이 그런 거지. 어차피 혼자 사는 거지'라고 대수롭게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같이 갈 사람'이  없는 것. 그게 너무 외롭다. 친구에게 그간 묻어둔 이야기를, 이 나이 먹어서  그런 속 얘기를 하는 것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떠난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 그 모습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갈수록 너무 미안해지고 죄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잘 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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