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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오징어땅콩



아빠와 나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태어난 연도 수만 봐도 65년 차이. 지극히 당연한 결과 일수 있다. 성씨도 다르고, 냄새나는 늙은 아빠가 정말 싫었다. 

식사시간. 한 톨의 밥알만 흘려도 눈을 흘기며, 벼가 어떻게 익어가는 줄이나 아냐며 고래고래  혼내셨었다. 동네에서 자자한 구두쇠라고 소문이 나있었고, 엄마와의 잦은 다툼으로 동네방네 행복한 가정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다.

중학교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옥탑방 내방에서 놀고 있을 때, 슬리퍼를 들고 와 친구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셨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욕으로 대답하셨고, 내가 싫어서 안달이 난 듯, 눈엣가시처럼 늘 째려보던 아빠.


내가 20살 초반 돌아가시기 전까지. 온 마음으로 그렇게  미워했었다. 

그렇게 남처럼 살아가던 중, 나와의 인사도 못한 채 하루아침에 돌아가셨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게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엄마가 발견했을 때 이미, 강직이 되어있었다.

엄마와 나는 다리와 팔을 주무르며 울고 있었다. 


그렇게 아끼고 아끼고 또 아껴, 통장에 모아둔 돈은 결국 엄마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생전에 그렇게 모은다고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무식하게 돈만 모으더니 허무하게 갔다'

며 엄마는 씁쓸해 하곤 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간간이 눈물은 났지만, 남들이 울지 않은 나를 보며, 아빠랑 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담담했다. 당시 나는 놀기 좋아하는 스무 살 초였고, 내 주변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람도 없었거니와, 죽음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 본적도 없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현실감각이 없었던 듯하다. 당황한 상태로 장례는 끝이 났다.


별일 없이, 회사를 다시 나가고 생활을 이어가려는 찰나였다. 아무 탈 없이 지내던 내가 밥만 보면 목구멍이 막히는 것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밥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밥알이 목구멍을 틀어막는 듯한 느낌이 났다.  목은 매이고, 눈물은 하염없이 질질 흘렀다. 밥을 먹을 때마다 잔소리하던 아빠 때문이었을까. 평생 아빠를 미워했다고 생각했는데... 난 이제 진짜 아빠가 없구나....'현실 자각 타임'을 아주 세게 얻어맞았다. 그렇게 미워하던 아빠였는데, 뒤에서 빨리 죽으라고 욕했는데... 나의 그 죄스러운 마음이 너무 미안해서. 차마 밥을 넘기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 후로 한동안 나는 밥을 먹지 못했다.


내가 5살 무렵. 아빠와 단둘이 자주 남산에 가곤 했었다. '오징어 땅콩과 빵빠레'


우리 둘은 남산 식물원 앞에 분수대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오곤 했다. 지루해 하는 나를 위해 어떤 날은 오징어 땅콩을 사주고, 어떤 날은 빵빠레를 사주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땅콩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과자만 먹고, 땅콩을 뱉어 내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나였다. 그 땅콩은 여지없이 아빠의 입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 기억 속의 아빠는 웃고 있었다.


미워하지 말걸. 그래도 잘해줄걸. 그래도 아빠인데.... 왜 그렇게 미워하고 싸우고 그랬을까?


아빠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만 든다. 난 왜 이렇게 철이 없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미워진다.


지금도 생각이 날 때마다. 혼잣말을 한다.


아빠. 나 이제 땅콩도 먹는 어른이야. 

아빠한테 좀 잘해줄걸. 너무 미안해. 


나는 오늘도 오징어땅콩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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