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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취미


목도리. 모자. 손가락장갑. 벙어리장갑. 가디간 등 형형색색 알록달록의 무늬가 돋보이는 작품들은 엄마의 솜씨. 무엇이든 금방 뚝딱 뚝딱해버리는, 요즘 하는 말로 금손이었다. 엄마의 영향이었을까? 중학교 때 나는,  목도리를 손수 떠서 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엄마에게 배운 것 같다. 목도리 하나 뜨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엄마가 금방금방 하길래, 쉽게 생각했나 보다.  

목도리를 만들었던 추억으로, 문화센터에 손뜨개 과목을 등록했다. 할머니 되면, 영화에서처럼 흔들의자에 앉아 폼 나게 손뜨개를 하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한 땀 한 땀 바늘로 실을 꿰어 작품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엔 취미로 가방과 모자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모자가 이쁘다며, 아시는 분이 5만 원에 모자를 사셨다. 그날은 정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나의 시간과 정성. 그리고 재료값을 계산해보면, 그리 비싸게 판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의 권유로 취미가 아닌 자격증반으로 등록하게 되었다. 어차피 배울 거 확실하게 자격증을 따면, 언젠가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가방과 모자, 복주머니와 손지갑, 그리고 조끼와 원피스까지 과정이었다. 아기자기한 것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내가 무엇을 만든다는 게 신기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손뜨개 2급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그 과정이 재미있고, 보람됐다. 반면, 많은 작품을 준비하려다 보니, 손가락이 석유로 만든 실에 의해 상해서, 너무 아팠다. 그 후, 몇 달은 휴식기를 가졌다.

석 달을 쉬고, 다시 센터에 나갔다. 뭐니 뭐니 해도 자격증은 1급이 끝판왕이니, 도전하고 싶었다. 1급을 따면 강사로도 활동할 수 있다 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때부터다. 점점 어려워지더니 걷잡을 수 없었다. 재미는 사라지고, 해야 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장갑과 양말, 온갖 무늬, 나에게 맞는 사이즈의 가디간까지.... 난이도는 '1급'에 걸맞은 상급이었다. 중간에 몇 번이고,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 몇 번이고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응원하셨다. 다른 사람보다 손이 빠르다며 격려해 주시고, 몇 번이고 물어봐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시간이 지나, 선생님의 인내심?으로  손뜨개 1급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막상 자격증을 따고 나니, 힘든 과정을 겪어낸 나 스스로  진심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모든 일은 하기 싫고, 순간의 힘듦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하지만 거북이걸음이라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하면 되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란 하. 면. 된. 다. 가 '닥치고 해'란 말과 일맥상통 인가보다. 또, 내가 쉽게 생각한 엄마의 손가락장갑, 벙어리장갑 등의 모든 작품은  정말 수고스러운 작업이었고, 엄마의 사랑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엄마에게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울고불고 난리 친 철없던 내가 너무 후회스럽다. 이 나이에 엄마한테 사랑타령이라니. 지금은 내가 사랑을 드려야 할 때인데. 나는 할머니가 돼도 철이 안 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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