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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계단노래방


우리 집은 도깨비시장, 한남동 산꼭대기 3층 다세대 주택이었다. 

3살부터 25살까지 살았던 그 집은, 옥상 뷰 맛집이었다. 남산 불꽃놀이 축제할 때마다, 친구들은 우리 집을 찾았고, 한남대교가 보이는 야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고민이 있는 나는 친구를 옥상으로 불러, 이야기를 몇 시간씩 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경치 하나는 끝내주는 집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이다. 

이 집의 장점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계단 노래방. 에코가 정말 끝내준다.

노래방도 없었던 국민학교 시절. 아니 이미 그 이전에도 아이들을 계단에 서너 명 모아놓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나다. 온 동네 쩌렁쩌렁 내 목소리가 울렸고, 아이들의 박수를 받는 것도 좋았다. 시장 밑 우리 집은 오가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어른들이 오가며 잘한다며 칭찬받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나 칭찬과 박수를 받고 싶었나 보다. 노래는 늘 동요로 시작해서 트롯으로 끝났다. 난 이미 그때부터 트로트를 좋아하는 뽕끼가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그 계단 노래방으로 실력을 쌓은 내가, 노래를 잘 부른 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다. 수업 시간 놀고 싶은 아이들은 선생님께 '주희 노래 시켜주세요' 주문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변진섭 오빠의 <숙녀에게>를 부르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땐 그렇게 많은 아이들 앞에서, 잘도 노래했던 내가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배꼽 친구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내서 당첨이 되었다. '한남동의 프리마돈나'라며, 제법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그림도 예쁘게 그린 엽서가 뽑힌 것이다!!!

난생처음 여의도를 갔다. 라디오방송은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부른 공일오비 [김태우의 가위바위보].노래자랑을 처음 나가는 나는. 너무 떨려서 그냥 인사말을 해도 목소리가 떨렸다. 나 말고도 참가자가 2명인가 더 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차여차 노래를 했는데,  성숙하게도 [전유나의 너를 사랑하고도]를 불렀던 것 같다. 결과는 믿을 수 없는 1등이었다. 내 친구는 나보다 더 좋아했고, 선물은 방송국 로고가 박혀있는 파란 손목시계를 받은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 시절, 계단 노래방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선물이었다. 시끄럽다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주민들의 수고를 뒤로하고, 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소녀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내가 노래할 때, 나에게 손뼉 쳐준 그 친구들이 아직도 내 곁에 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참 행복했었다. 

지금도 나와 같이 해주는 친구들. 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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