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상 시절, 성적은 괜찮았지만, 외모 때문에 줄줄이 면접을 낙방했던 나는,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거의 모든 대기업은 1차로 내신과 일반상식, 그리고 영어로 필기시험을 봤고, 2차가 면접이었다.
1차는 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지만, 2차 면접에선 그렇지 못했다.
못생긴 얼굴 때문일까? 아님, 작은 키 때문일까? 아니면 뚱뚱해서일까?
시간을 지나며 마음이 쫄아들었던 나는, 급기야 대기업 시험을 포기했다.
그리고 무조건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동네 버스에 붙어있던 입금원 모집 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버스회사에서 사람이 급했는지, 면접 간 날 바로 출근하라 했다.
입금원이 뭔지도 몰랐는데 가서 보니, 기사분들이 승객에게 받아온 토큰, 회수권, 동전과 지폐를 분리해서
얼마인지 확인하고 정리해서 경리과에 보내주는 일이었다.
회수권에 깊은 한? 이 있는 나에게 버스회사라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인생이라더니. 아이러니했다.
평생 만져볼 토큰과 회수권. 그리고 수많은 동전과 지폐가 내 손을 통해서 세어지고 정리됐다.
은행에도 없는 동전 분리기. 동전 자루 등 신기한 기계들도 그곳에서 처음 봤다.
격일제 24시간 근무로 하루는 회사에서 자고, 하루는 집에서 잤다.
업무를 2인 1조로 하는데, 그때 같이 일했던 한 살 터울 언니와 아직까지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같이 자고 먹고 일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지금도, 형제가 없는 나에게 친언니 같은 존재로 내 곁에 남아있다.
첫 월급은 오십만 원 남짓한 금액이었다.
내가 사회생활로 처음 번 돈을, 월급봉투 그대로 엄마께 전달한 감격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가 돈을 벌어서 엄마에게 드리는구나. 이제서야 내가 사람 구실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중요한 경험이었다.
어릴 적부터 들었던, 내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첫 실현을 이뤘던 회사.
동네에 가깝게 있던 회사는 없어졌지만, 건물은 남아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열아홉 살의 내가 힘든 일을 해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나의 직장 생활 25년 중 첫 1년.
그곳은 나에게 첫 도전이었고 추억이자 현실로도 보이는 감개무량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