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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남편의 꿈


백수 된 지 13일차. 아침부터 자동으로 다섯시 반에 눈이 떠졌다. 온몸이 끈적끈적 공기가 답답해서 눈이 떠졌나 보다. 일어나자마자 에어컨부터 틀고 선풍기를 돌린다. 둘러보니 남편이 없다. 벌써 출근했나 보다. 어제도 퇴근하자마자 저녁식사를 하며 반주로 소주 2병을 드시고, TV를 보며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잠드셨다. 늘 비슷한 패턴이다. 곁에만 가도 짜증을 내는 남편이 얄미워서 말도 걸지 않았다. 남편보다 옆집 아저씨가 낫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듯하다.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하라는 기혼자들의 말을 무시한 나의 행동에 대한 대가인가 싶었다.



남편은 전기쟁이다. 16년 전부터 전기일을 시작해서 책임자가 될 때까지 엄청 고단했다. 공구를 허리에 둘러맨 자리는 늘 까맣게 흉터처럼 자리 잡고 있었고, 여름이 되면 땀띠가 옴 몸을 덮어서 연고 없이는 못 살았다. 근래 들어 더욱 말라가는 몸과 욕실 하수구의 남편 머리카락은 '더 이상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라고 사인을 주고 있었다. 며칠 전, 동료들과 누가 제일 많이 땀을 흘리는지, 옷에 젖은 땀을 짜보며 서로 확인해 봤다고 한다. 단연코 본인이 1등이라는 일화를 얘기하던 쓸쓸한 눈빛이 스쳐갔다. 늘 전기작업을 마쳐야, 에어컨이던, 온풍기를 달수가 있기 때문에 추울 땐 춥게, 더울 땐 덥게밖에 일할 수 없는 작업환경인 것이다. 



뉴스를 틀어보니, 오전부터 27도 폭염주의보라고 한다. 오늘은 또 몇 바가지의 땀을 흘리고 일할까 생각하니, 백수가 된 내가 미안했다. 좀 힘들어도 나는 사무직이니, 좀 더 일할 걸 그랬나? 생각도 들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소주 몇 병을 냉장고에 넣는 일과, 얼음을 가득 얼려주는 일뿐이다. 



딸아이와 나는 남편이 가정에 소홀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힘든 건 이해하지만, 너무 신경을 안 쓴다고 말이다. 남들처럼 가족여행 한번 하지 못하고, 쉬는 날이면 잠만 자고 술만 마시는 남편이 늘 야속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석 달 만에 하루씩 쉬니, 오죽 편하게 쉬고 싶었을까? 이렇게 더운 여름이 오면 더 힘들었을 텐데.... 우리는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진실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나는 아무리 가족을 위한다고 해도, 단 하루도 그렇게 일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도장 기능사 자격증이 있다. 한마디로 페인트 작업. 하루 7시간을 서서 시험을 보는 그 자격증은.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사람이 하루 7시간 서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교육받을 때 몸살이 나고, 시험 볼 때 몸살이 나고 했었다. 그때 몸으로 겪어보니 차마, 그  일을 계속하라고 권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남편은 아직도 하루 3만 보를 넘게 걸으며,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야속하게 생각하다니.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 Bru-nO, 출처 Pixabay






남편의 꿈은 대형 트레일러 운전이다. 전기일을 하기 전에 이미 대행 트레일러를 운전했던 경험자로, 차를 사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했었다. 그 차는 앞과 뒤가 따로 분리되고, 어마어마하게 크고, 3억에 가까운 비싼 차이다. 평소에도 트레일러를 검색해서 미국의 멋진 차들을 보는 게 취미인 남편을 한심하기 짝이 없게 바라보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나는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남편의 단 하나밖에 없는 꿈인데, 그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해서라도 그 꿈을 이루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늘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꿈만 생각해 봤지, 남편의 꿈은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남편은 나에게 제일 가볍고 비싼 최신 노트북을 선뜻 사주었다. 가격차이가 엄청 크긴 하지만, 나도 남편의 꿈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남편의 꿈을 응원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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