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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삶과 죽음


친구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쓰러지신지 사흘 만이었다. 늘 당당하고 거침없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한데, 부고가 와도 믿기지 않았다. 며칠 전 통화를 했었다.

"이 노무자식~ 집에 놀러 오라니까 오지도 않고 말이야~" 

죄송하다. 나는 그때 만나러 갔어야 했다.

친구 아버지는 늘 젊게 사시는 분이셨다. 온 동네 떠나갈 듯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에 어머니를 뒤에 태우고 스피드를 즐기시던 분이었다. 71살이라는 나이보다 몇십 년은 더 젊고 옷이며 신발이며 브랜드를 입으시는 보기 드문 멋쟁이셨다.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의견이 분명하셨던 분이셨다. 신앙생활을 오래도록 하셔서 그런지, 주일마다 성당에서 봉사하시고, 늘 힘들 사람들을 도와주셨다. 기도하는 삶을 살고 성경과 늘 함께했다. 아버지가 없는 나는 친구처럼 살가운 부녀 사이를 보며 늘 부러워했다. 서로 먹고 싶다는 것을 챙기고 늘 통화를 하며 딸아이의 직장에 맛있는 간식을 배달하던 살가운 아빠였다. 

중학교 때 주말마다 성당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으셨다. 우리는 냉장고를 거덜 내고 시끌벅적하게 놀았으며 식욕이 왕성해 간식까지 넉넉하게 채워주셨다. 나의 아름다웠던 시절의 기억이다. 자식을 키워보니 그런 일들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보았다.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웠다. 친구 어머니도 친구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사람은 많고 정신은 없고 현실감도 없었다. 장례식 절차의 염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가족들은 안내자를 따라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가족들이 돌아왔을 땐 오열만이 남았다. 

어머니와 친구는 아직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긴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 한들 잊힐까.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몇십 년의 세월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주변 가까운 지인들이 돌아가시면 생각해 본다. 살고 죽는 것은 한 끗 차이일까? 사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이 죽는다는 것.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말. 세상을 떠날 땐 가족과 사랑 소중하고 애틋한 마음 등 무형의 의미들만 남는다는 어디서 본 문구가 생각이 난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가족과 후회 없이 사랑하며 아껴주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찔린다.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고 인간은 하루아침에도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랑하며 살면 세상을 등질 때 후회 없지 않겠냐는 가수 션이 하는 말을 방송으로 본 적이 있다. 후회 없이 아낌없이 사랑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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