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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Jul 13. 2022

장마와 인생

퇴근만 하려면 비가 미친 듯이 퍼붓는다. 우산을 쓰면 뭘 해? 우산 꼭지 사이로 비가 들어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는다. 버스 타러 가는 길이 삼만 리다. 호되게 비싸대기를 맞고 버스를 기다린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택시도 버스도 오지 않는다. 십여 분을 기다려 버스를 탔다. 너무도 감사하게 앉을 자리가 있다. 무거운 엉덩이를 앉히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는다.


버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비를 맞아 그런지 썰렁하기까지 하다. 주섬주섬 우산을 접고 젖은 몸을 추스른다. 가방이 얼마나 젖었는지 옷은 어떤지 살피고 축축한 신발의 찝찝함을 느낀다. 창밖에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게 비가 내린다. 창문 한 장 사이. 제법 운치 있어 보인다. 방금 전까지 잔인하게 내리는 저 장대비와 싸우던 나는 어디로 가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웃기다.


나는 참 간사한가 보다. 집까지 가려면 아직 열 정거장 정도 가야 한다. 길이 꽉 막혀 버스가 더디게 간다. 집에 가는 도중에 비가 다 내려서 내가 정류장에 도착해 집까지 걸어 갈때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비는 물을 들이 붓는것처럼 오다가 잦아들었다가 또 앞이 보이지 않게 온다. 시원하고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론 찝찝하다.


인생이 이런 걸까? 죽을 만큼 힘들다가도 살만하다 느낄 만큼 괜찮았다가... 장맛비가 꼭 인생의 고비처럼 느껴진다. 남의 큰 불행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크게 느껴진다더니.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보다 지금 비에 젖은 내 발의 꿉꿉함이 더 찝찝하다.


정확히 삼일전 사직서를 냈던 직원이 있다.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몇 번의 고비를 넘겼었다. 일주일의 인수인계 기간을 두고 그만두는 줄 알았는데 퇴근시간에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인사도 못하고 가게 됐다며 내게 그동안 감사했다고 전화를 했었다. 참 씁쓸했다. 이런 게 회사 생활이었구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매몰참이었다.


그녀는 집에 있으니 이 장맛비를 맞지 않겠지. 오래간만에 아이들과 집에서 부침개를 부쳐먹으려나. 어떤 사건이 일어나 당장은 나빠 보여도 나중의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법률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퍼붓는 이 비도 젖은 내 신발도 언젠간 더 좋은 회사로 가게 될 그 직원도 지금 좋다. 나쁘다.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 생각해 본다.


나는 이제 정류장에 내릴 준비를 한다. 비가 잠시 멈출지 퍼부을지는 하늘의 뜻에 맡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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