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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Jul 15. 2022

금사빠

나는 유독 사람을 좋아했다. 여자 남자 성별을 가리지 않았지만  유독 남자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부터  알았다. 우리 아빠는 나와 65세 차이가 났다. 아빠보다는 할아버지에 가까웠다. 그래서 젊은 남자를 좋아했나 싶다. 성당 선생님들을 좋아했고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던 오빠들을 좋아했고 동창인 친구를 좋아했다. 좋아한다는 이면 아래는 '남자는 강하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 준다. 의지가 된다'라는 환상이 가득했던 이유다. 나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 줄 것만 같은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에서 시작된 감정이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게  '내가 먼저 좋아했으니 넌 좋아하지 말라'라는 암묵적인 선을 그었다.  친구끼리는 남자 때문에 싸우지 말자고, 룰을 지키자며 늘 내가 먼저 좋아한다는 표현을 했다.  그래서 나중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몇 명 없을 정도로 모두가 사랑이었다. 나는 한번 보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금사빠'라는 별명을 친구들에게 얻었다. 단순한 호감만으로 그 사람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판단해 버리는 이상한 습관도 생겼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을 그땐 알지 못했다.

몇 번의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른이란 존재가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알았다. 나 역시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었지만 스스로도 그랬다. 나도 나를 믿지 못했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을 그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나약하다고 판단하며 스스로에게도 원망을 하곤 했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지도 모를 일을 여기저기 탓만 했던 내가 참 어리석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26년 차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가족을 이루고 아이가 생기고 주변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이제 누가 봐도 어른이다.  몸도 어른을 넘어선 아줌마가 되었고  웬만한 일들은 혼자 다 처리해야 하는 성인으로서 산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가 많다. 어른인데 이런 것도 못해?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서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부터 앞선다.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나 연륜 있는 직급의 상사를 보더라도 훌륭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몇 명 없다.

나는 사람의 좋은 면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알기도 전에 먼저 호감을 갖는 사람이었다. 그런 금사빠가 어떻게 이렇게 스스로도 못 믿을 만큼 부정적 시선 병이 걸린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부정적일 거라면 차라리 금사빠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은 점부터 봐주는.  칭찬은 하지 못하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먼저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른이라는 무게가 이렇게 큰 것일까 생각해 본다.

어른도 사람이다. 실수하고 만회하고 후회하고 그것을 반복하며 사는 그냥 사람이다. 어른이라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내야만 한다는 어릴 적의 높은 기준과 판단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 46살의 여자 어른이다.  하지만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하고 모든 것을 잘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어른도 부족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유독 사람들을 좋아했던 금사빠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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