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엮는 나의 삶 : 2024년 2월 20일
*제주 서귀포 하영올레길을 안내하는 서명숙 이사장(앞쪽 오렌지색 우비 입은 분), 2025년 4월
여러분, 오늘 귀한 분을 모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마 직접 걸어보신 분도 계시겠지요. 제주 올레길을 만드신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님을 모셨습니다.
글을 쓰는 일을 하다가 길을 내는 일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글에서 모음 하나만 옮기면 길이 됩니다. 글에서 길로 옮기는 것이 언뜻 쉬운 것이지만 길에는 글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사장님의 특강을 듣기 전에 제 말씀을 잠깐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 있는 존재가 다니면 길이 생깁니다. 이 말은 이들 존재가 살아가면서 남긴 흔적이 길이라는 뜻입니다. 길은 우리보다 앞서 그 길에서 존재했던 삶의 흔적이기에 그 자체 역사이고 그 자체 문화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길을 걷는 행위는 앞서 이 길을 걸었던 혹은 그 길과 함께 있었던 존재를 되새기는 역사적이고도 문화적인 행위입니다. 그 존재는 위대한 사람일 수도 있고, 평범하지만 살아내야 하는 생명으로서의 삶의 책무를 성실히 완수한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내 주위에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늘 보고 만나는 그런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동물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도 수백 년간 그 길옆에 서 있는 나무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길에 삶의 흔적을 남겨온 존재입니다.
세상 사는 참된 이치를 도리(道理)라고 합니다. 길道 자, 이치 理자를 씁니다. 우리는 도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궁극적 목표는 도를 깨닫는 것이지요. 선비는 평생 도를 깨치기 위해 즉, 도리를 알고 도리에 맞게 살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길의 이치가 도리이고, 길은 또 그 위에 이미 모든 생명체의 삶이 기록된 역사와 문화의 현장이니, 가장 좋은 공부터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걸으며 인생의 길(도리)”를 깨달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길 위에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길 위에 만들어 놓은 역사적 삶과 행위에 대한 사색적 만남일 수도 있고, 동시에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일 수도 있습니다.
길을 같이 걷는 사람을 우리는 도반이라고 합니다. 도반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길에서의 만남은 도반을 만나는 일입니다. 서명숙 대표님은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영국 친구, 도반으로 인해 제주에 올레길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길은 이처럼 우리에게 도반을 제공함으로써 “길에서 삶의 길, 도리를 배우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길이야 말로 우리가 도리를 깨우치는 좋은 방법입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충효예길’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길을 걸으며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그 길은 수백 년 동안 충과 효와 예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도리의 길입니다. 우리가 그저 나무하면서, 학교 다니면서 걸었던 그 길입니다. 그 길에 묻은 문화와 역사를 살려내고 의미를 부여해서 이어보려 합니다.
옛 존재의 흔적을 찾아 길을 되살리고, 없는 길은 친환경적으로 최소한의 새길을 만들어 길과 길을 잇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삶의 배움터를 끝없이 넓히는 의미있는 행위입니다.
저는 일을 할 때 그 일의 최종 모습을 그려 봅니다. 그러면 어려움이 닥칠 때 힘이 불끈 나거든요. “따뜻한 봄날, 혹은 하늘 좋은 가을날, 엄마 아빠가 아이들 손잡고 ‘충효예길’을 걸으면서 옛날이야기처럼 가족 간의 사랑, 이웃 간의 사랑, 나라에 대한 사랑을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을 꿈꿉니다.”
오늘 우리가 꿈꾸는 “길 위에서 도리를 찾고자 하는 이 일”을 먼저 해내시고 끊임없이 그 일의 의미를 전파하고 계신 서명숙 이사장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25년간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하시면서 언론인으로서 성공의 척도인 주요 언론사의 편집국장까지 하셨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50세에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나서 뜻한 바 있어 제주에 올레길을 만드셨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어려움이 닥칩니다. 그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그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또 그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사장님의 경험이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알아채게 할 맑은 거울이 될 것입니다.
이제 잘 나가던 도시 생활, 끗발 있는 언론 생활을 청산하고 제2의 인생인 ‘길 내는 사람’으로 살게 한 그 뜻한 바가 무엇인지를 들어보겠습니다.
@ 내가 자란 논산 탑정호 주변 100리는 우리나라에서 '충효예'가 가장 응축된 곳이다. 유교의 기본 이념인 충효예가 어린 유적과 선인들과 이야기를 하루 거리안에서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은 단연코 이곳이다. 2022년 12월 1일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초대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이곳을 '충효예길'로 부활시키려고 하였다.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된 후 이 일을 먼저 시작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을 논산으로 불러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꿈을 상의하였다. 마을의 주민도 함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