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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Jan 13. 2023

1. 우울증과 번아웃이 그렇게 왔다.

점증하는 삶의 고통이 내게 남긴 것



졸업할 즈음부터 내 몸은 망가지고 있었. 나는 밤샘의 연속인 건축전공 장학금과 생활비에 목을 매던 학생이었다. 청춘의 설렘이야 있었지만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다. 본격적인 통증은 취업과 거의 동시에 찾아왔다. 병원은 내 허리통증을 미병으로 진단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나는 백 미터 남짓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몇십 걸음 만에 발과 다리가 부어 신발이 순식간에 꽉 끼는 부종을 느끼며 출근했다. 그 상태로 출근해 자리에 앉으면 오후 3시쯤 되면서부터는 허리가 아프고 다리 전체가 저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회사 눈치 보며 병원도 자주 가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밥 대신 병원을 선택했다. 버는 돈의 반 정도를 추나와 물리치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들이붓는 식이었고 나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건강하지 못한 매일을 버티는 인내는 내게 주어진 인생의 디폴트 값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할 사회생활의 시작이 내게는 가난한 고학생 때와 별 다르지 않은, 아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 더 고통스러워 삶을 감내해야 했다.


건강을 잃으니 그다음은 마음이었다. 회사 생활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고되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항상 새로운 업무는 내 것이었다. 여러 번 이직을 해도 나는 매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세팅하고 진행해야 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회사는 가르쳐주지 않고 빚을 독촉하는 사람처럼 결과물을 받아갔다. 열심히 임했으나 그럴수록 주변의 월급루팡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이 쌓여갔다. 나름 유머러스하고 털털하다는 평을 받았던 나는 예민해졌으며 곧잘 날카로워졌다. 인생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돈이라는 존재가 취업해서 돈만 벌게 되면 점점 나아질 거라고 학생때는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그 무엇 하나 뜻대로 채워지지 않았고, 마음까지 가난한 삶을 버티고 있었다. 20대를 그렇게 보내며 30대가 되면 좀 괜찮아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서른 하나, 별안간 아버지가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 아버지의 내시경 결과를 들으러 나 혼자 만나러 간 의사 선생님에게서 6개월에서 1년 기간 정도가 남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물었다. 병원에서 우리 가족 몇 달 치 생활비가 한 번에 적힌 병원 치료비 청구서를 매주 받으며 그래도 정신 차려야 이마저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를 계속 옆에 두고 싶어 했지만 돈벌이를 그만둘 수 없었다. 그때 나는 해외 업무를 홀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회사는 내 개인사정을 절대 배려해주지 않았다. "니가 담당자인데 니가 해야지 누구보고 하라고." 하필이면 해외 프로젝트가 겹쳐있었고 아버지의 투병이 장기가 될지도 모르니 언제까지 못 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잦은 출장을 다녔다. 그러나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은 2개월 반뿐이었다. 출장을 다녀온 며칠 후 그렇게 아버지의 생은 내가 잠든 사이 나버렸다.


결핍을 채우기는커녕 자꾸만 잃게 되는 이 지난한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버리고 싶어졌다. 고통스러운 삶을 지속하는 게 의미가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 때문에 죽을 용기가 없이 아침에 눈을 뜨니 살아낼 뿐이었다. '삶이 대체 나한테 왜 이러지.' 처음에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느 순간 '아 나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내가 아니게 되었구나'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나는 여태껏 잘 못 살아왔던가' 하는 생각에 우울함과 번아웃이 겹쳐 해일처럼 밀려와 덮쳤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우울함은 멈출 줄 모르고 깊어졌어느 순간부터 나는 마치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잊어버린 것처럼 사회적 관계에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때 내게 남아있던 건 눈물과 분노뿐이었다.






불공평한 이 세상 너무도 다른 운명
신이여 이 불행은 나의 잘못인가요
... ...
신은 어디 있나요.
높은 교회인가요.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 곁인가요.
가난한 목자들의 초라한 경배보다
동방박사의 황금
주님도 사랑하나요.

'불공평한 이 세상' 中,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그래도 이때는 자기 연민의 감정이라도 있었다. 신을 탓하고 싶었고 나를 둘러싼 사회에 탓을 돌렸다.

더 힘들었던 것은 이 이후에 내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고 후회하는, 스스로를 돌보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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