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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Jan 27. 2023

3. 나를 꺼내주세요.

더 나빠지는 삶의 절망에서 피어난 의지


나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고나서부터는 인생의 전략을 세울 수가 없었다. 자그마한 자극에도 가슴이 쿵쾅쿵쾅 벌렁벌렁 댔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한계치에 임박한 상태로 밝은 햇살마저 나를 자극하는 게 싫어 집에 돌아오면 유리창을 암막커튼으로 가리고 이불속으로 눕는 것이 내 최선의 선택이었다.


 제발 누가 나 좀 꺼내주세요.


절대적 존재나 혹은 백마 탄 왕자님이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도저히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허덕였다. 주변 사람들도 나에게 지쳐갔고 나 또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거의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놓아버렸다. 그런 주제에 나를 구원하는 존재를 꿈꾸다니, 나도 참 어리석다.

아버지를 잃고 도망간 어린 심바에게도 티몬과 품바가 있었는데... 노래 한 번 부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디즈니 주인공들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그만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하루하루가 지속되었다. 끊임없는 불안과 우울의 동굴 속에서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음에도 마음은 제자리를 찾을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를 보낸 아픔은 짧은 시간으로는 전혀 잊히지 않았다. 해외로 출장 가서 아주 잠시의 현실도피의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엄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먼 길 비행과 현장에서 내내 서있어야 하는 출장일이 잦아졌을 때 허리 상태는 더욱더 나빠졌고, 그만큼 정신은 더 피폐해졌다. 처음 우울증 판정을 받은 지 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3년쯤 지났을 때 일상생활을 하루하루 버텨내는데 정말로 한계가 왔다. 누워있는 것조차 허리가 아파 잠으로도 도망치지 못했다. 하루를 버티고 매일 밤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고 불안과 싸웠다.




삶은 내 편이 아니다.


이보다 더 바닥이 있을까 싶을 때에도 포기하는 나를 잡아 삼키는 어둠이 있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직접 겪으니 불안이 가중되었다.


즐거운 것도 행복한 것도 바라지 않았다.

마음과 몸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인생이 이렇게 허망한데 더 여기서 잃어야 할 것들이 있던가.

아, 지나고 나면 지금이 그때보다 나은 상태일까.

나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 불행해질까.

시간의 흐름에 젊음을 빼앗기고, 남은 건강을 빼앗기고

언젠가는 내게서 엄마마저 앗아가려나.

설마가 아니라 그것은 예정된 인생의 수순이었다.


... 갑자기 어둠 속에서 의지가 피어올랐다.


동굴 밖이 무서워서 나가지 못했던 내가 그 조차도 무너져 내릴까 봐 동굴 밖을 나가기로 했다.


적어도 나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나빠진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다시 애를 써보기로 했다.


아, 다행이었다. 심연의 어둠을 두려워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삶의 의지라도 남아있어서.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는 것이.


'나는 누구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통째로 잊어버린 삶의 전략을 다시 찾아야 했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 밖의 세상을 마주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본질적인 물음에서부터 출발해 보기로 했다. '부정하고 싶은 현재의 내가 원래의 나일까? 아니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내가 진짜 내 모습일까?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마음이 편해지려면, 그리고 살아내려면 대체 어디에 서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 걸까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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