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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Feb 03. 2023

4. 버티게 해 준 시간들

위로가 되고 지탱해 준 힘


"삶에서 넘어졌을 때 벌떡 일어나려 하지 마세요. 도움을 청하거나 지지대를 이용하세요. 급하게 일어나면 더 큰 상처가 생길 수 았습니다. 잠깐만 넘어진 채로 있어보세요. 스스로 일어날 힘이 생길 거예요."


김창옥 선생님이 강연 중 나와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라면서 하신 말씀이다. 선생님 말마따나 나는 오랜 시간 엎어져 있는 동안 나와의 관계에 갈등이 있는 상태였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과거, 현재, 미래의 내가 갈등 중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삐그덕 거렸던 거다. 누워서도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살짝 달렸다가 다시 엎어지는 신체적 상황에 재활이 필요했던 것처럼 마음도 재활이 필요했던  왜 그때는 몰랐을까.


갈등 :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들이 충돌하는 현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해도와 공감도를 높여 괴리감을 줄여야 한다. 행복해지겠다는 굳은 의지, 구체적인 자기 계발의 목표 같은 것들은 전혀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했던 일련의 일들이 나를 이해하고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지탱하게끔 하는 힘들이 있어 그 오랜 시간을 그래도 살게끔 버텨주었으리라.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나는 동기는 비관적인 불안에서 기인했지만 그래도 일어날 때까지 나를 버티게 해 준 시간들이 있었다.




하나,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는 순간, 지대넓얕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일은 나한테 필요한 거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복기의 끝나지 않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시기가 맞았던 것이 그 또 한참 인문한 열풍이 불었고 나는 '지대넓얕' 팟캐스트에 몰두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아?',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는 표현을 더러 하는데 사실은 서로의 상식이 맞지 않을 때 나온다. 그만큼 우리는 갖가지 다양한 사람들과 살고 있다. 지대넓얕을 통해 세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같은 주제에도 서로 달리 말하는 논쟁이 항상 있지 않았나. 그들의 수다 안에서 나는 성격, 가치관, 심리 등 내적인 조각들을 찾으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출장길 잠들지 못하는 비행기 안에서, 숙소에서 그들의 수다는 외로움을 자처하는 나에게 홀로 있는 순간을 잊게 만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주변의 지인들과 우리만의 전문적인 수다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회로도 돌려보곤 했다. 몇 년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지금도 가끔 그리울 때 듣곤 한다.


둘,

물리적 위로를 받는 순간, 금요일 저녁의 해후


출퇴근해서 만나는 일적인 관계 외에 가장 자주 만나는 인간관계는 물리치료 선생님이었다. 한 해에 겨우 서너번의 대면 약속을 잡는 고립된 삶을 살았으므로 선생님은 내 일상을 가장 가까이 나누는 사람이었다. 별것 아닌 일상적인 일들에도 비루한 내 몸뚱이는 몸으로 다 표현했다. 안정적이지 못한 근육들이 긴장하고 틀어져 있으면 선생님은 내 일상을 곧잘 알아챘다. 마사지를 해주시며 "이번주 야근이 많으셨던 거 같은데",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어요?" 같은 이야기. 그분에게는 환자를 대하는 친절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따뜻한 온기에 마음이 녹아내리곤 했다. 금요일 저녁, 피로와 긴장감을 풀고 집에 가는 길은 몸만 가벼운 것이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졌다. 언젠가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마음도 잠깐 든다. 금요일 저녁에 기분이 좋은 것은 다음날이 주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셋,

눈물은 이곳에서 흘려보내. 감정의 해우소 뮤지컬


우울함이 폭발하고 나서는 이부자리에서 우는 것으로는 슬픔이 해소되지 않았다. 찰랑찰랑 조금만 흔들리면 넘쳐버릴, 물로 가득 찬 잔이었다. 그래도 아침엔 멀쩡히 붓지 않은 눈으로 출근해야 했고, 버스 안에서 철철 울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다녀왔습니다" 집으로 귀가했다.

그런 내게 감정의 해우소는 극장이었다. 뮤지컬은 내 유일한 취미다. 가난하게 산 주제에 너무 고급 취향인 것은 안다. 심지어 허리도 안 좋은 놈이 작은 좌석에 움직이지도 않고 꼬빡 앉아야 하는, 아주 부적합한 취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춤과 이야기가 있는 완벽한 취향이었고, 극장 안에서 극한의 감정을 쏟아내는 걸로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극이 끝나고 '후우우우우우' 심호흡하며 한 번씩 감정을 털어냈다. 허물리치료 한번 받을 값을 마음에 썼다고 위안 삼으면서 보러 가곤 했다. 그리고 극장에서 오래 앉아있기 위해 '허리 얼른 나아야지', '티켓값 벌러 일해야지' 다짐도 하며 동기부여와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언제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아니다. 한참을 울고 나와도 마음이 무거운 때도 많다. 나는 극장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배울 수 있었다. 돈키호테가 거울의 기사를 만나 자신의 늙고 초라한 모습에 무력해졌던 것처럼 그 안에서 나의 단점, 나의 태도, 가치관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마음과 감정으로 느끼다 보니 머리로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받아들이기 버거울 때도 많았다.


그리고 나아가 극의 시대적 배경, 연출의 의도 등 극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작품 공부도 하곤 했다. 알아낸 정보에 내 사견을 더해 언젠가부터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뮤지컬이 열어준 세계는 생각보다 깊었다. 나는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그 세계로 곧잘 도망쳤다.




마음의 재활이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기 위해서 누워서 호흡 한번, 발끝 하나, 찬찬히 움직여보자. 내 몸이 원하는,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알아보려 하고 이해해보려 해 보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며 나와의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언젠가는 땅을 짚고 서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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