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숲, 걷기. 좋아하는 것의 집합체
기다리던 봄이 왔다. 노오란 연두색의 연한 새잎들을 내놓으며 따스한 햇빛을 맞이하는 자연을 즐겨본다.
5월 18일, 일요일
올해도 남산으로 봄산책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남산맨션 쪽에서 시작해 산 초입에 산책길에서 충분히 여유를 만끽하고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나무 단지를 지나 남산남측순환로(가을단풍길)에 합류하는 숲길이 었다. 이틀 동안 비가 온 후 아침에 당도한 남산에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풀냄새가 가득했다. 폐에 맑은 공기를 담으니 종종 답답했던 마음을 있는 대로 열어젖히고 싶었다. 호흡이라는 자동적인 행위가 이토록 행복할 수 있나. 마음껏 가득 풀냄새를 담아 들이마시는 기쁨에 벅차고 또 이렇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내가 너무 고마워서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한걸음 발을 내딛을 때마다 시야를 돌릴 때마다 순간순간 인식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즐기다 보니 저절로 마음의 의식이 자연에 닿고 마음이 정화됨을 느낀다. 엊저녁 내린 비로 잎사귀 위 망울망울 맺혀있는 물방울, 작디작은 꽃이 내뿜는 진한 꽃향기, 땅에서 높게 솟아 핀 꽃술에 머리를 박고 있는 개미, 시간이 지나 해가 높이 떠오르면서 나뭇잎들 사이로 부서지면서 땅으로 당도한 노란 햇빛을 바라보는 모든 순간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드는 시간이었다.
5월 24일, 국립수목원
친구와 봉선사 템플스테이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잡게 된 국립수목원 약속이었다. 이른 아침까지 비가 오고 날이 흐린 날이라 햇살과 푸른색의 높은 채도는 보기 어려웠다. 예쁜 사진을 담는 데는 실패했으나 비 온 뒤의 흙냄새, 풀냄새를 좋아하니 그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휴대폰은 그냥 주머니에 넣어두고 눈으로 호흡으로 숲을 담았다. 친구와 함께 갔으므로 도란도란 얘기도 했는데 내가 중간중간 크게 숨을 들이마시니 한숨을 쉬는 줄 알고 친구가 자꾸 놀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숨 쉬는 게 너무 좋아서, 냄새가 너무 좋잖아." 하고는 또 크게 쉬었다. 친구도 "그래, 좋네. 좋아."
봄나들이 나온 어머님들이 소녀같이 즐거워하는 모습도 너무 귀여웠다. 엄마들이 꽃사진을 찍는 건 온갖 일을 겪으며 일상의 순간을 즐기는 삶의 지혜이지 않을까. 나도 나이 먹고도 친구들과 산책 다니는 저런 삶을 계속 살고 싶다고 바라면서 그분들을 보니 어머님들의 웃음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충분히 많이 걸었고 배도 고파져 수목원을 떠났지만 다른 날씨, 다른 계절에 또 가고 싶은 곳이었다.
사실 명상을 공부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크게 깨닫지 못한 탓에 자리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걷기 명상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맞다. 기왕이면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이 좋고 되도록이면 혼자서 내가 인식하는 자연의 세계를 오롯이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이 좋다. 특히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맞이하는 봄에는 피어나는 자연의 생명력에 움츠러들었던 내 마음도 덩달아 동력을 얻는다. 아름다운 자연을 걸으면 내면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돌보는 기분이 든다. 아름답고 평온한 나만의 정원을 그려본다.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나 자연경관 앞에서 번잡함과 욕망으로 가득 찬 일상의 자아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순수한 즐거움에 몰입하여 내면이 고요하고 평온한 기쁨으로 가득해지도록 해야 한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