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세계관이 영어로 뭐야?
마곡에 있는 한 기업에서 통역을 하던 중 겪은 일이다.
'카카오프렌즈에는 세계관이 있다'라는 말이 나왔다. 'Kakao Friends has its own world view'라고 말하면 어딘가 어색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돈 받고 일하는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화자 말 그대로 저렇게 전했다.
이때, 저 world view 대신에 들어가야 될 단어가 바로 떠오른다면 당신은 영어 고수이거나 아니면 센스 쟁이일 것이다.
내가 저렇게 말하자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 측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아 카카오프렌즈에는 철학이 있구나?'였다. 라이언한테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니...
사실 저 world view 대신 들어가야 될 단어는 나도 알고 당신도 이미 알고 있는 단어이다.
바로 Universe이다.
애초에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우리가 한국어에서부터 잘못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게임 혹은 영화에 세계관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메트릭스에는 세계관이 있다"라고 한다면 무슨 뜻일까?
자세히 말만 뜯어 놓고 보면 세계관은 영화 속의 세계 혹은 배경을 보는 '관점'이다. 즉 영화만의 (1) 세계가 있고 (2)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따로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이때 '세계관'은 영화만의 특정 '세계'와는 별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뜻으로 "메트릭스에 세계관이 있다"라고 말을 하는걸까?
아닐 것이다.
평소 우리는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영화만의 세계 혹은 세팅'과 같은 의미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통역중 잘못된 한국말 표현 그대로 세계관(world view)이라고 전달하지 않고 '관(觀)' 없이 세계(universe)라는 단어를 써서 "Kakao Friends has its universe"라고 통역했다면 뒤이어 철학이니 하는 쪽으로 대화 내용이 안드로메다로 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로도 애초에 영화든 게임이든 특정 매체만의 세계나 우주라는 단어를 썼다면 맥락상 의미가 맞았을 텐데 왜 처음부터 '세계관'이라는 틀린 표현을 썼기에 굳어져 일상에서 자주 쓰이게 되었을까?
추정해 보자면 영화나 게임만의 '특정 배경'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을 때 이런 개념에 단순히 '세계'나 '우주'라는 표현을 쓰면 느낌이 어색했기 때문일 수 있다. 평소에 세계나 우주 같은 표현은 우리말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갖다 쓰기에는 뭔가 거창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별 의미 없이 '관'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어색함을 희석시키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말은 거창하지 않고 조금 담백하다. 조금 나쁘게 보면 좀 단조롭다. 그래서 한국인이 보기에 영어는 좀 오버스럽고 일본어는 뭔가 좀 거창하다.(내 주관적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블 덕분에 우리는 어느새 자연스레 세계관이라는 표현 대신 써야 될 '유니버스'라는 표현에 더욱 친숙해졌다. 그래서 아마 필자 말고도 자연스레 '세계관'이라는 단어 쓰임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서두에서 바로 "유니버스라고 했어야지 쯧쯧"하고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다수의 한국인들이 영어로 대화를 할 때 정서는 한국적이기 때문에 universe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긴 어려울 것이다. 사실 본 글에서 '세계'라는 표현을 '배경'이나 '세팅'이라고 했어도 의미가 통하는 것처럼 맥락에 따라 영어에서는 '배경'이라는 뜻으로 universe라고 해도 될 텐데 말이다.
PS 저런 특정 매체의 '세계 혹은 우주'라는 개념이 거품 경제 이전 일본에서 애니매이션을 중심으로 활발히 쓰였을 것 같다. 범인은 외부에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