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출근
고요하고 적막한 사무실의 불을 켜며 이 공간에 내가 들어왔음을 알린다. 지난밤 한기로 가득 차있던 사무실에 불빛이 들어오며 약간의 온기가 도는 것 같다. 온풍기를 틀어 방안 가득한 한기를 몰아내고 온기로 채우고자 한다. 커피 머신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려 자리에 아와 노트를 편다. 평일엔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을 먼저 확인했겠지만, 오늘은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에 노트북이 아닌 노트를 편다.
일요일의 사무실은 평일의 사무실과 여러모로 다르다. 출근길이 막히지도 않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사람이 없어 누구와 마주칠 일도 없으니, 인사를 할 필요도 없다. 매일 업무를 하며 생활하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지만, 일요일의 사무실은 나에게 익숙함 속 색다름을 선물한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시끌벅적함이 아닌 혼자만의 고요함을 선물한다.
조용한 클래식을 틀어놓고 노트를 펴고 끄적끄적 몇 자 적기 시작한다. 처음엔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두서없이 적다 보면 글의 갈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갈래 중 관심이 가는 주제를 정해, 그 주제를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노트 속에서 나의 상상력은 무한하게 발휘된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되었다가 빌 게이츠가 되기도 했다. 넥스트팬지아는 애플도 되어보고, 테슬라도 되어본다. 나는 일요일 사무실에서 노트에 글을 적기도 한다.
노트북을 켠다. 업무용 이메일과 노션을 연다. 지난 한 주의 업무를 정리하며, '놓친 일은 없는지', '더 잘할 수는 없었는지' 등 업무에 대한 것들을 회고한다. 대부분의 일들은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열정적으로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었고 성실히 행동했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잘 해결된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주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 맞는지에 대해서도 동기화가 잘 되어 있는지 맞춰본다. 궤도를 이탈하고는 있지 않은지 점검한다. 나는 일요일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 해보니 나는 직장인이었을 때도 일요일에 출근을 했던 것 같다. 매주 출근을 하진 않았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땐 아무도 없는 일요일 사무실을 애용했던 것 같다. 일요일 사무실에서의 나는 생산성이 매우 높았다. 몇 번의 일요일 출근을 거치면 신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PDF 전자책이 나왔고, 해외영업 강의 교안이 나왔고, 각종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과 공간을 잘 활용하여 집안 청소와 정리를 하듯 나의 생각을 잘 정리해줘야 한다. 생각 정리 시간이 없다면 우리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하기만 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 언급한 대로 엔트로피는 증가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각은 무한정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무지성적인 생각의 증가는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없도록 각종 생각들로 나를 꽁꽁 싸매둔다. 진정한 나를 알지 못한 채 불필요한 생각들에만 둘러싸여 내가 생각을 하는지, 생각을 위한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노트에 글로 적어 보는 것이 최선이다. 글을 적고 나고 읽어보면 나의 생각이 보인다. 나는 일요일 사무실에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는 일요일 사무실에서 노트에 글을 적기도, 업무를 하기도,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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