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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하는 CEO Jan 30. 2024

가슴속의 나, 머릿속의 나, 글 속의 내가 다르다

창업 초기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

오랜만에 2년 전 일기를 보게 되었다. 그 일기의 시점은 창업 후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참 고달팠던 시기였었다. 해외영업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B2B 비즈니스의 특성상 프로젝트 시작부터 발주서 접수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사업을 해보니 발주 없는 하루하루가 정말 가시방석과도 같았다. 아낀다고 최대한 아끼며 살아왔지만 법인 통장과 내 개인 통장의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이내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바이어들은 왜 발주를 주지 않지?’, ‘새롭게 알게 된 바이어들은 왜 찔러만 보는 거지?’,  ‘이러다가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등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 감정들을 해소할 곳이 없어 일기에 대고 한풀이를 했던 것 같다. 매일의 일기 분량이 A4 한 장이 넘었다.  그 일기 속, 가슴속의 나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으로 발주가 없음에도 열심히 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기 속, 머릿속의 나는 자금이 점점 바닥이 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며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글을 통해 본 글 속의 나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현재 처한 위기 상황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그 때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강렬했던 폭풍과도 같던 시기를 보내서였는지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 일기를 쓴 것은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 때 술 마시고 푸념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그 감정을 글을 쓰며 풀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그 당시에 비해 상황이 나아졌을 때는 다시 그때의 글 속의 나와 마주하면 그 힘들었던 기억마저 추억이 된다.


그 당시 나의 소확행은 일주일에 100시간이 넘게 일하며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던 토요일 저녁때, 시장에서 산 닭강정과 맥주 한 캔이었다. 일기 속에는, 원래는 자주 먹던 닭강정 한 박스가 5천 원이었는 데, 6천 원으로 기습적으로 20%나 인상을 했다며 분통해하는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천 원이라는 돈의 크기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꽤 큰 금액이었던 것 같다. ’두 번 먹던 것을 한 번으로 줄여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을 가슴속의 나(미래의 희망)와 머릿속의 나(현재의 삶)와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것인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할 것인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수렴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 당시의 감정 등을 글 속의 나(과거)로 남겨 놓지는 않는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산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초심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초심자의 마음과 감정 상태를 그대로 기억할 수는 있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의 감정과 생각, 사건 등은 그저 압축되어 한 두 단어로, 때론 한 문장 정도로 밖에 남아있지 않는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 여부를 떠나 글로 남겨 놓는다면 머릿속의 나와 가슴속의 나는 글 속의 나로 새길 수 있다. 꺼내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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