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인연의 시작
2019년 10월 24일 삼성동 파르나스몰에서 글로벌 헬스앤뷰티(H&B) 스토어인 세포라가 오픈했다.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Moet Moët Hennessy Louis Vuitton)가 소유한 세포라는 34개국에 2,600여 개의 매장을 보유 중이며, '체험형 화장품 편집숍' 개념을 도입하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2014년 5월 나의 인생을 바꿔줄 그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013년 11월 첫 홍콩 출장을 시작으로 시작된 화장품 해외영업은 2014년 초 잠시 휴식기를 거쳐 4월부터 본격적인 전시회 출장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필자는 화장품에 대해서는 철저한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제품 공부뿐만 아니라 화장품 브랜드 기업들에 대해 별도로 공부를 해야 했다. 지금이야 미국과 유럽시장 화장품 전문가로 불려질 정도로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땐 정말 무지했다.
그렇게 4월 중국 상해 전시회를 마치고 5월 일본 전시회를 참가했다. 중국 전시회와 달리 참관객들이 많지 않았기도 했거니와 부스 위치가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부스 방문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방문하는 손님도 필자는 일본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금발의 외국인이 지나가는 게 보여 이때다 싶어 회사 브로슈어를 건네주며 회사 소개를 했다. 간단히 소개를 하고 시간을 좀 끌어볼 요량으로 샘플로 들고 갔던 핸드 마스크팩을 착용하게 도와주었다.
핸드 마스크팩을 착용한 뒤 그녀는 우리가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보던 그런 감동 리액션을 시전 하였다.
'AWESOME!, FANTASTIC!'을 연신 외치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 모습에 나도 신이 나서 이 핸드 마스크팩은 심지어 핸드폰 액정도 터치할 수 있다는 비장의 무기를 어필하며 떠들어댔다. 그렇게 10분 동안 그녀는 감동을, 나는 안도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명함을 주고받는 시간이 되었다.
명함을 받았는데 모르는 회사였기 때문에 큰 감흥은 없었지만, 꽤 젊은 사람이 vice president(부사장)라는 것이 인상 깊었다.
'역시 미국은 능력이 있으면 진급도 빠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명함을 주고받고 부스를 떠나며 그녀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I really like your products, very impressive. I've never seen this kind of product before so that I think we can make something together. If you are willing to work with us, let's have a meeting in my office after this show."
제품이 너무 맘에 들어요. 이런 종류 제품을 본 적이 없어서 더욱 감명 깊습니다. 우리 함께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랑 협업할 의향이 있으시면 전시회가 끝나고 제 사무실에서 미팅 잡아보시죠
그 당시 미국 자체를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미팅 장소가 미국, 그것도 San Fransico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잠시 동안 샌프란시스코 출장을 가는 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지만, 그렇게 미팅을 하자는 업체들이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현실로 돌아와 다음 방문 손님과 미팅을 하였다.
다음 손님과 미팅을 마치고 잠시 쉬어볼까 하는 찰나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소리를 질렀다. 얼굴도 상기되어 있었다. 나에게 그 미국 바이어의 명함을 다시 보여주며,
동료 : 아니 대리님! 이 업체랑 미팅하신 거예요?
필자 : 네, 왜요? 그 바이어도 우리 제품에 호감이 많아서 한 번 잘 만들어 보려고요.
동료 : 아니 이 회사를 몰라요?
필자 : 유명한 회사인가요?
동료 :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화장품 사러 여기 매장 밖에 안 갔어요.
동료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내가 어떤 업체와 그것도 그 회사의 부사장님과 미팅을 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화장품 업계 진입 6개월 만에 엄청난 미팅을 했던 것이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사실 몰랐기 때문에 태연하게 평소와 다름없이 미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혹시나 알았더라면 부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성공리에(?) 일본 전시회를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밀린 업무 처리 등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난 뒤 그분(?)께 정성스럽게 메일을 보냈다.
해외영업을 꽃은 출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외출장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발주에 대한 부담감과 비행시간과 시차로 인해 실시간으로 업무가 진행되지 못하기 때문에 업무가 밀리게 된다. 발주로 진행될지도 모르고 과연 날 기억하고 만나줄 지도 모르지만 그냥 왠지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분(?)께 세상 정성스럽게 메일을 발송했다.
며칠 동안 메일 회신이 없어 낙담하고 있었다. '전시회 기간 동안 바쁘니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5일 뒤에 드디어 회신 메일이 도착했다. 전시회 뒤로 바빠서 메일 회신이 늦었다는 인사와 함께 언제든 방문해도 좋다는 GREEN LIGHT!
그런데 막상 이메일을 읽고 나니 막막했다. 전시회 3번 말고 단독 해외 출장은 가본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뭔가 발주를 받아 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초기 단계에서 과연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미국 출장을 보내줄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촉은 '이 출장은 무조건 가야 한다'라고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략이 필요했다. 원하면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2편에 계속...
ps. 일본 출장 갈 때 탑승 게이트에서 만난 박명수 님. 그대를 만나 일본에서 귀인을 만났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