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의 비행 미국 도착...여기가 본사가 아니라고???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서 미팅을 하자’는 메일을 받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미국 출장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터라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한편으론 ‘막상 갔는데 빈 손으로 돌아오면 어쩌지?’라는 마음도 들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안고 이사님과 대표님께 보고를 드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해봐
필자의 보고를 받고 대표님은 몇 가지를 묻고 고민을 하시더니, 다녀오라고 했다. 단, 이사님과 동행 없이 혼자 다녀오라 했다. 이 기회를 만든 것도, 초청은 받은 것도 필자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알아서 하고, 빈 손으로 돌아와도 좋으니 일단 혼자 가서 부딪혀 보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아직 화장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글로벌 대기업과, 그것도 부사장님과 미팅인데 혼자 가라니… 당황스러웠다. 절망적인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것도 내가 엎지른 물이었다. 물을 엎질렀으니 주워 담을 수는 없고, 엎지른 김에 물청소를 잘해보자는 생각으로 출장 준비를 시작했다.
출장은 2주 뒤로 정해졌다. 필자에게 주어진 2주 동안 스스로를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과 미팅을 할 수 있는 수준을 만들어야 했다. 그 수준이라는 게 정해진 것은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멋진 모습은 있었다.
ICE Braking time :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인사를 하며 부드러운 미팅 분위기 만들기
회사 소개 :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회사 이미지 전달
제품 소개 PT :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제품 소개. 꼭 사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조성
Q&A : 물어보는 어떠한 질문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완벽하게 답변하기
필자가 생각하는 그런 멋진 해외영업인이 되기 위해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어차피 인생은 한 편의 연극 아니던가? 대본을 스스로 써야 하는 게 기존 연극과 다른 점이긴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해외영업 배역에 충실하고자 했다. 심지어 ice braking time 때 할 말까지 대본에 적어 넣었다. 그리고 연극 배우처럼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연극 연습을 하듯 연습을 했다. 회사 업무와 출장 준비를 병행하니 2주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항공기 탑승 시간이 오후였기 때문에 아침에 회사로 출근을 했다. 그 당시 회사는 사무직 인원이 10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과 이사님께 인사를 하고 드디어 공항으로 출발했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수능 당일의 느낌이 그랬을까? 비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흡사 시골에 사는 장남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상경하는 것과 같은 느낌 마저 들었다.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장시간 비행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정보도, 준비도 없었다. 하필이면 좌석도 가운데 중간 좌석이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었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잠도 오질 않았다. 그렇게 뜬 눈으로 10시간을 넘게 버텼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중 드디어 캡틴의 도착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Ladies and gentlemen. Welcome to San Fransico international airport. For your safety, please remain seated until the captain has turned off the seat belt sign......
곧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했다. 떨리는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수화물을 기다리면서 핸드폰으로 로밍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미팅하기로 한 사람으로부터 이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What? 본사가 프랑스에 있다고?
도착을 하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메일을 자세히 확인해보니, 비행하는 동안 프로젝트 개발 주체가 미국 지사에서 프랑스 본사로 이관됐다고 했다. 미국은 지사이고 프랑스가 본사라고 한다.
'아니 잠깐.... 미국이 본사가 아니었다고? 프랑스가 본사라고?'
맞다. 그땐 정말 너무 무지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그렇게 외쳐대면서 정작 미국 기업인지 프랑스 기업 인지도 몰랐다니. 너무나 한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사람들 중에서 세포라가 미국 업체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때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프로젝트의 행방이었다. 프랑스 본사에서 개발을 한다는 게 좋은 것인지? 아니면 좋지 않은 소식인지 당시로써는 알 수가 없었다. 실제 미팅을 진행해봐야 그 속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멋진 도시에 도착했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호텔로 이동했다.
샌프란시스코 호텔 비용은 비싸기로 유명하다. 값싼 호텔을 찾다 보니 도심지 중심부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호텔은 아니어서 놀랐고, 엘리베이터를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수동으로 문을 여는 엘리베이터라... 여기 미국인데? 편히 쉬러 온 거 아니니까 놀란 마음을 다잡고 미팅 준비를 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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