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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하는 CEO Aug 31. 2021

구석기시대로 돌아간 IT 스타트업 대표

기업 대표들의 '감'이 좋은 이유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집인은 융통성 있게 그때그때 되는대로 먹고살았다. '사냥꾼 인간'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들의 주된 활동은 채집이었다. 대부분의 칼로리를 여기서 공급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싯돌, 나무와 같은 원재료도 채집으로 구했다~~~~

[사피엔스 중 수렵채집인 묘사]


14여 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스타트업 대표가 된 지 이제 한 달이 됐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기 때문에 직장에 늦을 일이 없었다. 매일 7시경 출근해서 독서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딱히 출퇴근 스트레스가 있진 않았다. 스타트업 대표가 된 뒤 가장 어색했던 부분은 매일 14년 동안 반복했던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직장생활 동안 하던 대로 세미 정장 스타일들의 옷을 입고 매일 출근했다. 그나마 달라진 건 사무실 오픈 시간이 9시여서 그 시간에 맞춰 출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12시가 되면 점심 식사를 하고, 아이스커피 한 잔을 사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퇴근은 항상 6시 이후에 했다.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혼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퇴근을 해서도 집에서 대부분 야근을 했다. 주말에도 일을 했다. 


왜 출근을 하지?

그러다 문득 '왜 출근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이 없는데 직장 생활할 때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읽었던 수렵채집인의 생활이 떠올랐다. 직장인이었을 때 읽었기 때문에 그때그때 되는대로 살았던, 그 수렵채집인의 생활이 부러웠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들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아침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하지만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5시면 눈이 떠졌다. 사냥과 채집활동을 위해선 사냥감을 끝까지 쫓아갈 수 있는 건강한 체력과 강한 근력은 필수 조건이다. 그래서 아침엔 운동을 했다. 달리고 맨손운동을 했다. 


12시부터 1시, 직장인 점심시간이 돼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일 하는 도중에도 배가 고프면 먹었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시장에서 고기 사냥을 했고, 과일이나 야채가 먹고 싶으면 마트에서 채집을 했다. 수렵채집인들은 맛볼 수 없는 맥주가 있어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감사했다.


출근을 하지 않았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놨기 때문에 사실 사무실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미팅이 있거나 특별히 사무실을 나가야 할 때만 출근을 했다. 그리고 출근을 할 때 유난히 더운 날에는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출근을 했다. 


무려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반바지를 입고 따릉이를 타고 출근하는 내 모습을 보니 어색했지만 편해 보이고 좋았다. 


출근을 안 하니 오히려 효율이 더 좋았다.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잠옷을 입고 편하게 업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는 잘 안 씻게 된다. 그래서 거울을 보면 수염도 자라 진짜 수렵채집인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직장인들의 가장 힘든 시간이 바로 2시에서 3시 사이다. 점심 먹고 잠이 올 시간이다. 수렵채집인인 나는 업무를 하다 피곤하면 잠시 침대에서 편하게 눈을 부쳤다. 잠깐의 낮잠이 커피 10잔 보다 더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다 직장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스토리만 있는 건 아니다. 단점도 있다. 주간 52시간이 웬 말? 60, 70, 80, 심지어는 100시간이라도 필요하면 업무를 해야 한다. 기업은 크든 작든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면 된다. 스타트업은 모든 게 다 나의 일이다. 주요 업무 이외에도, 회사 설립, 세무/회계, 인사, 연구개발, 영업, 마케팅 모든 게 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잘 나가는 기업의 대표들은 감이 좋다


비록 한 달 간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 흔히 '잘 나가는 기업의 대표들은 감이 좋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의 감이 좋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래 박스의 글은 [사피엔스]에서 수렵채집인에 대해 추가로 설명한 부분이다. 

수렵 채집인은 현대 인간에 비해 주변 환경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고 다양한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산업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연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수렵채집인들은 주변의 동물, 식물, 물건뿐 아니라 자기 신체와 감각이라는 내부 세계에 대해서도 완벽히 터득했다.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사용한 덕분에 마라톤 주자처럼 건강했다. 

수렵채집인은 사흘에 한 번밖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며 채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에 3~6시간에 불과했다. 평상시에는 이 정도 일해도 무리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가사 노동의 부담도 적었다. 수렵채집인은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다양한 식단에 있었다. 한 가지 식량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해당 식량의 공급이 끊어져도 문제가 없었다. 

바로 이 부분이다. 


수렵채집인과 기업 대표의 공통점은 항상 생존의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나와, 무리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심지어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모든 능력을 생존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발달시켜야 했다. 사냥을 하기 위해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고 신체를 튼튼히 단련하여 사냥의 성공률을 높여야 한다. 또한 맹수로부터 스스로와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더 빠르고 강해져야만 한다. 어떤 식물에 독이 있고, 어떤 식물을 섭취할 수 있는지 등의 지식을 끊임없이 익혀야 한다. 살아남아 있는 자들은 생존을 위해 모든 감각을 발달시켜 수많은 위기를 넘겨온 사람들이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도 이런 감각이 발달하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비즈니스 모델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분야도 사업성이 있다 판단해서 추가를 했고, 다른 분야보다 먼저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결국은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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