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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하는 CEO Oct 06. 2021

그저 일출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럴 때 있잖아요. 갑자기 일출이 보고 싶을 때...

2개월 차 스타트업 대표에게 무기력과 함께 찾아온 슬럼프

 하루 일과를 완벽하게 계획하고 살진 않지만, 계획적이고 규칙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누구의 간섭도 조언도 없다. 장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나태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최대한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명상, 글쓰기, 운동, 독서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무기력증의 증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번 무기력증은 '귀찮음'을 동반했다.


 가장 먼저 운동하기가 싫어졌다. 사실 새벽 러닝은 매일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오죽하면 러닝 중 가장 힘든 구간은 ‘침대에서부터 현관까지’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 힘든 구간을 매일 잘 이겨내고 있었는 데, 무기력증에 빠진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스스로와 타협했다.


 ‘비가 오니 오늘은 쉬자’, ‘내일 아침 비가 온다고 했으니, 그냥 푹 자자’, ‘어제 늦게까지 일을 했으니, 오늘 쉬자'


 내가 이렇게 협상의 달인인 줄 미처 몰랐다. 나는 나를 너무나 잘 설득했다. 스스로와 협상하여 타협안을 도출했고, 그렇게 성공적으로(?) 거의 일주일을 뛰지 않았다. 뛰어야 할 이유보다 뛰지 않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

출처. unsplash.com


 이런 무기력증이 아침 습관에만 영향을 미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의욕이 감소하니 업무의 무게감이 느껴졌고, 해야 할 일들을 점점 뒤로 미루게 되었다. 모든 업무에 적극적이었던 내 모습은 온대 간데없고, 내일의 나에게 업무를 미뤘다. 비록 일주일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몇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내 속에 내재된 '나태 방지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는지, 뭔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계속 이렇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타트업 대표의 고뇌

 비록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안다. 사실 39년을 살면서 아직도 가끔은 낯설고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직도 스스로를 잘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다. 스스로 무기력증에 대한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을 해보았다. 결국 올게 온 것이었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1인 기업 또는 소수의 팀원들과 함께 한다. 업무는 수많은 파트너사들과 함께 할 수 있지만, 결국 모든 고민과 결정은 혼자 하고, 그 무게 또한 감당해야 한다. 직장생활에서처럼 맡은 바 업무만 잘 해내면 되는 게 아니다. 모든 의사 결정은 대부분 회사의 존립과 생존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기업은 사람과 시스템이 있으면 돌아간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같은 회사에 근무하며, 비록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런 의견의 다름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회사는 성장한다.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사람도 없고,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은 이런 '정반합' 과정 없이, 시스템 없이, 오직 대표자의 직감과 판단에 의해 움직이고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창업을 한 뒤, 두 달 반이라는 기간 동안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철저히 회사를 위해 움직였기 때문에, 회사는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점점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내가 소진되고 있었다. 나라는 양초가 다 태워지고 있었기에, 그 신호로 무기력이 찾아온 것이었다. 새로운 양초로 바꿔줘야 할 때가 왔다.  


양초 교환 의식

 그래도 한 주를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침대에 누워 쉬다가, 그냥 갑자기 일출이 보고 싶었다. 바다 끝, 수평 선위로 떠오르는 해가 보고 싶었다. 산에서 해돋이는 많이 봤지만, 바다 일출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양초 교환 의식을 치러줄 장소로도 적합했다. 새롭게 떠오르는 해로 양초의 불을 붙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출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바로 정동진이 떠올랐다. 기차표를 알아봤지만 이미 매진이었다. 방법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다. 스타트업 대표는 철저히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BMW(Bus/Bicycle, Metro, Walk)를 이용해왔다. 비록 자차는 없지만, 플랫폼 시대에 살기 때문에 차량 공유 앱을 통해 많은 차를 잠시 동안 빌릴 수는 있었다.


 쏘카와 그린카 둘 중 비교를 해보니, 그린카는 24시간 9,900원 쿠폰을 제공해주어 그린카를 통해 예약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자고 새벽 2시에 일어나 정동진으로 출발했다. 일출을 본 뒤, 카페에 앉아 책 한 권을 보고 싶어, 읽고 있던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을 챙겼다. 같은 책이라도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책도 달라진다. 이 책에는 정말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많다. 장소가 달라지면 더 크게 와닿을 것 같아 챙겼다.  

 두 시간 반을 달려 정동진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해변가 일출 감상 장소에 도착했다. 1월 1일 새해도 아닌 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여명 전이라 아직은 어두웠지만,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사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았다. 모든 풍경들은 그저 눈으로 바라만 봐도 좋았지만, 좋은 곳, 좋은 음식을 대할 땐 핸드폰 카메라를 켜야 하는 ‘국룰’을 지키기 위해 나도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열심히 촬영을 했다.  

'국룰' 지키는 중

 드디어 여명이 밝아왔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라도 하듯, 수평선과 맞닿은 바다와 하늘은 붉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양초 교환 의식'을 준비했다. 이번엔 이전보다 더 큰 양초를 준비했다.



 잠시 뒤, 드디어 빨간점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다의 일출은 그 자체로도 감동이었다. 매일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특별하게 보였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나를 위해 떠오르는 해처럼 느껴졌다. 나를 위해 떠오른 해로, 나는 내 마음속의 양초에 다시 불을 붙였다. 양초는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다시 꺼질 날이 오겠지만, 그땐 미리 센스 있게 더 큰 양초를 준비하겠다.


새벽에게 바치는 인사
                                              - 칼리다사 -

보라 이 날을
이 날이 인생이고, 인생 중의 인생이다.
짧은 이 날의 과정 속에
네 존재의 진실과 실체가 있다.
성장의 기쁨이
행위의 영광이
아름다움의 영예가.
어제는 한낱 꿈이고
내일은 오직 환상이니,
그러나 오늘을 올바르게 사는 것은 어제를 행복의 꿈으로
모든 내일을 희망의 이상으로 만드나니,
고로, 잘 보라 이 날을!
그것이 새벽에게 바치는 인사니라.

-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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