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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하는 CEO Dec 05. 2021

힘을 빼니, 최고의 결과를 얻었다

힘 빼고 치는 볼링, 힘 빼고 쓰는 사업 계획서 

80과 120 사이 


'쾅'

내 손을 떠난 13파운드 볼링공은 마치 볼링핀들을 공격하려는 대포알과 같은 무서운 기세로 볼링 레인 위를 날아가 가냘픈 볼링핀들을 모두 쓰러뜨려 버렸다. 흉폭했던 대포알의 공격으로 불과 몇 초 전까지 볼링핀들이 서있던 장소에는 볼링핀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다. 볼링 게임을 하며 10 프레임이 진행되는 동안, 이런 짜릿한 경우는 사실 겨우 한 두 번뿐이지만, 이 맛에 종종 볼링장을 갔던 것 같다. 


한 구 한 구 전력을 다한 나의 투구는 후유증을 동반했는 데, 볼링 한 게임을 치고 나면 팔뚝의 전완근이 엄청 당긴다는 것이다. 신나게 한 게임치고 나면, 두 번째 게임부터는 부상투혼을 발휘해야 한다. 전완근 통증을 안고 쳐야 했다. 그래서 볼링은 딱 두 게임만 치는 운동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볼링 스코어는 80점과 120점을 왔다 갔다 했다


볼링장에는 항상 대부분 동호회원들이 볼링 게임을 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마이볼과 마치 전사들이 사용하는 장비를 착용한 채 멋진 폼으로 투구하는 모습은 정말 멋졌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투구하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볼링공은 여지없이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더 대단한 건, 나는 두 게임이 한계였는 데, 그 사람들은 3~4게임, 심지어 5게임 이상 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힘 빼세요


 볼링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볼링 프로의 강습까지 받아가며 볼링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종종 직장 동료들과 볼링장에 갈 때마다 한 번쯤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다. 그러던 중 '2교시'라는 어플을 알게 되었다. 강사가 프로는 아니지만 볼링 강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고, 동호회 형태로 3개월 동안 주 1회 강습 및 모임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기에 신청을 했다.  


첫날, 강사 앞에서 첫 투구를 했다. 평소대로 나의 손을 떠난 볼링공은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볼링핀을 향해 돌격해나갔다. 이번에도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볼링 레인 위에 있던 10개의 핀은 파편이 되었을 거라 예상을 했지만,  무려 5개의 볼링핀이 생존해 있었다. 볼링핀 잔당 처리를 위해 다시 투구를 했다. 이번엔 '쾅' 소리가 아닌, '퍽' 소리가 들렸다. 핀을 지나쳐 뒷 벽에 맞았던 것이다. 스페어 처리에 실패했다. 


'어이구 볼링핀 다 부서지는 줄 알았어요, 힘을 빼고 투구해보세요' 


그 말을 듣고, '힘을 빼라고? 힘은 어떻게 빼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 사람이 투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성 회원분이었고, 내 볼 무게의 반도 안 되는 6파운드의 볼로 투구를 했다. 볼링공은 볼링 레인 위를 마치 유람하듯 천천히 굴러갔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 뒤 볼링핀은 유람을 마치고 볼링핀이 서있는 곳에 도착했음을 알리듯이 '콩'하는 소리가 내었다. 1번 볼링핀이 힘없이 쓰러지더니, 뒤에 있는 볼링핀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였다. 그제야 힘 빼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었다. 



강습과 연습으로 얻은 193점 

몇 차례 더 강습을 받고, 연습을 많이 했다. 투구 정확도 향상을 위해 마치 내가 시계추가 되고자 노력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80점과 120점 사이를 오가던 스코어는, 평균 140점으로 향상되었고, 최고 점수 193점까지 달성했다. 이제는 4게임을 해도 전완근이 더 이상 당기지 않는다. 강사님이 말했던처럼 힘을 빼니 가능했다. 






다시 듣게 된 힘 빼세요 

얼마 전, 투자 관련 멘토링을 받던 중 멘토에게서 볼링 강습받을 때 들었던 말을 들었다. '힘 빼세요!' 운동 강습을 받을 때나 듣던 말인데 멘토링을 받으면서 힘 빼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 어색했다. 내 사업계획서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많이 했고, 많이 하고 있어서, 많이 보여주고 싶은 건 알겠는 데, 그러다 보니 핵심 전달이 잘 안된다는 것이었다. 


멘토링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와 내 투자 설명회용 사업계획서를 다시 찬찬히 훑어보았다.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해보니, 정말 가장 중요한 핵심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투자 스피치는 5~7분 정도로 시간이 정해져 있는 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핵심만 명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내 사업계획서는 그 핵심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사업계획서는 왜 쓰세요? 

스타트업은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 한 들 그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업계획서에 진심인 편이다.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부분 사업계획서 작성 목적은 투자를 받기 위함이다. 나 또한 사업계획서 작성에 투자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보다 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바로 사업 아이디어의 구체화함께 할 사람들과의 비전 공유이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나의 사업 계획이 계속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면 나만의 공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제 아무리 세상을 놀라게 할 사업 아이디어라 해도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머리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마치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듯, 사업 계획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야 한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나듯, 사업 아이디어 또한 성장시켜,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가 사업이라는 것을 세상에서 처음 시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많은 고민을 했고, 이미 다양한 접근법 및 해결책을 제시해두었다. 우리는 일단 그 형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업 아이디어를 일정한 틀에 맞춰 작성해봐야 한다. 즉, 일반적인 사업계획서 양식에 우리의 사업 아이디어를 맞춰 넣어 보아야 한다.  


 이렇게 사업계획을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상상 속에 존재하던 나의 사업 계획은 조금씩 현실화되어 갈 수 있다. 사업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다양한 협업 방법으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직원, 투자자, 고객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선 회사의 비전과 추구하는 가치가 그들과 공유되어야 하는 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사업계획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상상 속에 존재하던 사업 계획의 현실화 작업을 위해, 함께 할 사람들과의 비전 공유를 위해 사업계획서 작성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 





힘을 써봐야 힘을 뺄 줄도 안다. 

볼링이든, 골프든 대부분의 운동은 사실 힘을 빼야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초보자들에게 힘을 빼라는 말만큼 어려운 말이 없다. 힘을 세게 주지 않았는 데도 힘을 빼라 하고, 온 힘을 다했는 데, 힘을 더 주라고 한다. 나만의 적정한 힘주는 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모든 힘을 잔뜩 줘서 시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온 힘을 줘서 시도해보면 분명 얼마 못가 금방 지치게 되고, 온몸 구석구석이 아프기 시작할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것이다. 시행착오 없이 성공할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시도해보고 점차 힘들 빼며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나만의 힘쓰는 법을 찾을 수 있다. 


사업 계획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부터 잘 쓸 수 없다. 잘 쓰려고 노력하기보단, 비록 아직은 망상 일지 몰라도 내가 꿈꾸는 사업의 비전, 나의 모든 역량 등을  일단 사업계획서에 다 적어보는 것이다. 있는 힘껏 모든 힘을 주어 사업계획서를 써보는 것이다. 


분명 머리에 쥐가 나고, 사업계획서에 대한 피드백이라도 받게 되면 큰 좌절감이 들 것이다. 세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일 것이다. 괜찮다.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이제는 조금씩 힘을 빼보자. 가지를 쳐내 보자. 가장 핵심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다 보면 결국 나만의 사업계획서가 탄생하게 된다.


사업계획서는 유기물과 같아 한 번 만들어 놨다고 가보처럼 모셔두어선 안된다. 계속 살펴보고 수정하며 갈고닦아야 한다. 자신만의 힘쓰는 법을 알게 된 뒤에는 이런 작업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결국 힘을 써봐야 힘을 뺄 줄도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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